허수아비가 지어낸 강성, 실제 화성에서 무너진 수사의 순서
ENA 드라마 허수아비가 빌려 온 화성 사건의 구조를 허위자백, DNA 증거, 검찰과 언론의 역할로 나눠 분석한다.
작성 · 검수 남우진 · 최종 검토 2026년 10월 5일
볼지 말지
- ENA 드라마 '허수아비'는 가상의 지역 강성을 배경으로 1988년 연쇄살인 수사와 약 30년 뒤를 오가며 화성 사건의 구조를 빌려 온다
- 실제 화성 사건에서 수사가 어긋난 지점은 범인 지목이 먼저 오고 증거가 뒤따른 순서의 역전이었다
- 허위자백은 가혹행위만이 아니라 고립·피로·암시가 겹쳐 만들어지며, 과학 증거가 이를 뒤집은 것은 한참 뒤였다
- 검사와 기자라는 두 직업이 사건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드라마가 던지는 제도적 질문이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질문이 남는 작품이 있다. 올해 4월 20일부터 5월 26일까지 ENA에서 12부작으로 방영된 ‘허수아비’가 그렇다. 박해수, 이희준, 곽선영이 출연했고, 무대는 1988년 가상의 지역 ‘강성’이다.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수사는 가혹행위와 누명과 은폐로 흘러가며, 사건을 함께 겪은 사람들의 삶이 무너진다. 이 글은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드라마가 어디서 구조를 빌려 왔는지, 그 현실의 수사가 어떤 순서로 어긋났는지를 제도의 눈으로 뜯어본다.
강성은 가상이지만 뼈대는 화성에서 왔다
드라마는 실제 지명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1988년과 약 30년 뒤의 현재를 오가는 시간 구조, 시간이 흐른 뒤 DNA 수사로 진범이 특정되는 흐름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일어난 연쇄살인과 그 후일담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이 공식적으로 어느 사건의 영상화라고 밝힌 것은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모티브로 읽힌다’는 정도로만 말해 둔다.
현실의 뼈대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화성 사건은 알려진 대로 연인원 200만 명이 넘는 경찰력이 투입되고도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났다. 그러다 2019년 사후 감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관 중이던 증거물의 DNA가 다른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인물과 일치했고, 그 인물이 여러 건의 범행을 털어놓았다. 8차 사건은 별개 범인이 이미 복역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은 2020년 재심 끝에 무죄가 선고됐다. 이 8차 사건 자체의 경과는 본지가 앞서 다룬 바 있어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는다.
| 구분 | 드라마 속 설정 | 현실에서 확인된 것 |
|---|---|---|
| 무대 | 가상의 지역 강성, 1988년 | 경기 화성 일대, 1986~1991년 |
| 해결의 계기 | 시간이 지난 뒤 과학 수사 | 2019년 보관 증거물의 DNA 대조 |
| 수사의 그늘 | 가혹수사·누명·은폐 | 일부 사건에서 재심 끝에 무죄 선고 |
흥미로운 점은 제작진이 범인보다 ‘그 사건을 함께 살아낸 사람들’에 초점을 둔다고 소개된다는 것이다. 범인의 정체는 장르의 동력이지만, 이 드라마의 무게는 수사 기관 안팎에 있던 사람들이 각자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실려 있다. 같은 이유로 이 글도 가해자의 수법이나 피해 상황은 다루지 않는다.

자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범죄심리의 관점
허위자백은 ‘고문에 못 이겨 아무 말이나 했다’는 한 줄로 설명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경로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는 순응형으로, 당장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정하는 경우다. 잠을 재우지 않거나 오랜 시간 고립시키면 판단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지금의 고통이 끝나는 것이 미래의 불이익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둘째는 내면화형으로, 반복되는 단정적 질문 앞에서 스스로 기억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다. 셋째는 방어형이다. 나중에 법정에서 밝히면 된다고 믿고 일단 수긍하는 것인데, 이 믿음이 가장 위험하다. 법정에서 자백이 뒤집히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보 오염이 더해진다. 수사관이 현장의 세부를 질문 속에 흘리면, 피의자가 그 세부를 되받아 진술하고, 조서에는 마치 ‘범인만 아는 사실’처럼 남는다. 이른바 비밀의 폭로라는 이 개념은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는 핵심 잣대인데, 그 비밀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추적하지 않으면 거꾸로 허위의 증거가 된다. 특히 지적·사회적 약자는 권위 있는 사람의 표정과 질문에서 정답을 읽어 내는 데 능숙해 이 함정에 더 쉽게 빠진다는 연구가 이어져 왔다.
드라마가 설득력을 얻는 지점은 이런 심리를 악당의 잔혹성이 아니라 평범한 조직 논리로 그린다는 데 있다. 범인을 잡으라는 위의 압박, 수사 본부의 실적, 이미 한 번 방향을 정한 팀의 확증 편향이 겹치면 누구도 ‘이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개인의 악의가 없어도 시스템은 오류를 만들 수 있다.

과학이 뒤집은 것은 사건이 아니라 증거의 위계였다
법의학의 시선으로 보면 이 사건군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진술 증거는 물증과 충돌할 때 약해져야 하는데, 과거에는 그 위계가 거꾸로였다. 자백이 있으면 물증의 불일치는 ‘오염’이나 ‘감정 한계’로 정리됐고, 자백이 없으면 물증이 있어도 결정타가 되지 못했다. 1980년대 말에는 DNA 대조 기술이 수사 현장에 쓰이지 않았고, 당시 감정은 혈액형이나 흔적의 형태 같은 제한된 비교에 의존했다. 이런 기법은 ‘배제’에는 쓸모가 있어도 ‘특정’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은 보관의 문제다. 2019년의 대조가 가능했던 것은 누군가 증거물을 폐기하지 않고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증거물 보관은 사건이 종결된 뒤에는 비용으로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기술이 바뀌면 유일한 자산이 된다. 지금도 재심 사건에서 증거가 이미 폐기되어 다툴 수 없다는 사정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이 제도적 구멍은 완전히 닫힌 것이 아니다.
또 하나는 감정 결과의 해석이다. 미세한 흔적을 비교하는 감정은 결론이 ‘일치’냐 ‘배제’냐만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인의 판단이 개입하는 구간이 넓다. 따라서 감정서 한 장이 판결을 좌우하는 구조라면, 반대 감정을 받을 기회와 감정 자체를 검증하는 절차가 함께 있어야 한다. 드라마에서 과학 수사가 늦게 도착한 구원처럼 그려지는 것은 극적 장치지만, 현실에서는 도착이 늦었기 때문에 이미 잃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는 점이 더 아프다.
검사와 기자, 두 직업이 서 있는 자리
드라마에서 이희준이 맡은 인물은 수사를 주도한 검사이고, 곽선영이 맡은 인물은 지역 일간지 기자다. 두 직업을 나란히 놓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건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제도적 문지기가 바로 이 두 곳이기 때문이다.
검사는 법적으로 경찰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 이론상 경찰의 오류를 걸러 내는 두 번째 눈이다. 그러나 조직이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이 두 번째 눈은 오류를 걸러 내는 대신 이미 만들어진 그림에 법적 형식을 입히는 역할로 기울 수 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제도는 바뀌었지만, 기소 단계가 수사 단계의 결론을 검증하는 장치로 작동하는가는 여전히 사건마다 다르다. 영장 청구와 구속 연장을 판단하는 법원까지 포함해 세 겹의 관문이 모두 같은 서사를 받아들인다면 문지기는 없는 것과 같다.
언론은 반대 방향의 위험을 갖는다. 공포가 확산되던 시기에는 범인 윤곽에 대한 보도가 곧 사회적 압박이 된다. 수사 기관의 브리핑을 그대로 옮기는 보도는 초기 용의자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나중에 사실이 달라져도 정정은 작게 실린다. 반면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지역 기자의 기록은 훗날 재심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가 ‘진실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삼는 인물을 따로 둔 것은 이 양면성을 의식한 설계로 읽힌다.
내가 보는 이 사건
나는 이 드라마를 ‘범인 찾기’가 아니라 ‘순서의 이야기’로 읽었다. 현실의 수사가 어긋난 근본 원인은 한 명의 악인이 아니라 순서의 역전, 곧 범인을 먼저 정하고 증거를 거기에 맞춰 가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서가 한번 굳으면 선의의 수사관도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된다.
그래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개선은 극적이지 않다. 조사 전 과정의 녹화, 변호인 조력권의 실질화, 증거물의 장기 보관, 확정 판결 뒤에도 과학적 재검증이 가능한 길을 열어 두는 것. 모두 평범한 제도다. 다만 드라마가 보여 주듯, 이런 장치가 없던 시절에 한 사람이 치른 시간은 어떤 보상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판결이 뒤집힌 뒤에 박수를 치는 것보다, 뒤집힐 일이 덜 생기는 구조를 만드는 쪽이 훨씬 어렵고 훨씬 값지다.
한 가지 덧붙이면, 시청자로서의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공포가 클수록 우리는 빠른 범인과 빠른 처벌을 원하고, 그 요구가 수사의 속도를 재촉한다. 속도는 정의의 친구가 아닐 때가 많다.
자주 묻는 질문
- Q. 허수아비는 실화를 그대로 옮긴 작품인가? — 아니다. 무대와 인물은 가상이며, 제작진이 특정 사건을 그대로 옮겼다고 밝힌 것도 아니다. 다만 1980년대 연쇄살인과 수십 년 뒤 DNA 특정이라는 흐름이 화성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다.
- Q. 허위자백은 가혹행위가 있어야만 나오는가? — 그렇지 않다. 장시간 조사, 수면 부족, 고립, 단정적 질문, 조사관이 흘리는 세부 정보가 겹치면 폭행 없이도 허위자백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 연구의 일반적 결론이다.
- Q. 자백이 있으면 유죄 판단에 충분한가? — 형사소송법상 자백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고 보강 증거가 필요하다. 다만 실제 재판에서 보강 증거 기준이 느슨하게 적용되면 형식만 갖춘 보강이 될 위험이 있어, 물증과의 정합성을 따로 보는 일이 중요하다.
- Q. 확정된 판결도 다시 다툴 수 있는가? — 재심이라는 길이 있다. 새롭고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거나 수사 과정의 위법이 인정되는 등 요건을 갖추면 열리지만, 문턱이 높고 증거가 이미 없어진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