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그래미 출품 거부’ 선언, 신설 ‘아시안 팝’이 건드린 것
BTS가 5집 '아리랑'을 2027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 신설 '아시안 팝' 부문을 둘러싼 논란과 양측 입장을 정리했다.
작성 · 검수 정민석PD · 최종 검토 2026년 8월 2일
이슈 한눈에
- BTS 멤버 전원이 7월 29일 같은 메시지로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한 달 앞서 신설된 '베스트 아시안 팝 퍼포먼스' 부문이 사실상의 방아쇠로 지목된다.
- '인정의 확장'이라는 그래미 측 해명과 '게토화'라는 비판이 정면으로 맞선다.
세계에서 가장 큰 팝 그룹이,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상에 스스로 문을 닫았다. 불과 몇 해 전까지 BTS는 그래미 무대를 향해 손을 뻗던 도전자였다. 다섯 번 후보에 올랐지만 트로피는 끝내 없었다. 그런데 5집 ‘아리랑(ARIRANG)’으로 빌보드 싱글·앨범 차트를 동시에 정상에 올린 지금, 이들은 후보 심사대에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도전과 심판의 위치가 뒤바뀐 이 장면은, 단순한 불참 통보 이상의 질문을 남긴다.
무슨 일이 있었나
7월 29일, BTS 멤버들은 각자의 SNS에 동일한 문구를 올렸다.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는 짧은 통보와 함께,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문장이 뒤따랐다. 소속 멤버 전원이 시차 없이 같은 메시지를 낸 것은,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팀 차원에서 조율된 입장 표명임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대상이 된 앨범은 지난 3월 발매돼 빌보드 메인 차트를 석권한 ‘아리랑’이다. 자격 요건상 2027년 2월 열리는 제69회 그래미의 유력 후보군에 들 수 있었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에 가깝다.

다섯 번의 후보, 한 번의 트로피도 없이
이번 거부가 무게를 갖는 이유는 BTS가 그래미와 쌓아온 이력 때문이다. 이들은 K팝 최초로 그래미 후보에 오른 팀이지만, 정작 수상과는 번번이 어긋났다.
| 연도 | 후보작 | 부문 | 결과 |
|---|---|---|---|
| 2021 | Dynamite |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 수상 불발 |
| 2022 | Butter |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 수상 불발 |
| 2023 | My Universe (콜드플레이 협업) |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 수상 불발 |
| 2023 | Yet to Come | 베스트 뮤직비디오 | 수상 불발 |
총 다섯 차례 후보 지명에도 본상은 물론 장르상조차 손에 넣지 못한 이력은, 팬덤 사이에서 오랫동안 ‘그래미의 K팝 홀대’라는 서운함으로 남아 있었다. 그 서운함의 대상에게, 이제 BTS가 먼저 등을 돌린 셈이다.

방아쇠가 된 ‘베스트 아시안 팝’
결정의 배경으로는 한 달여 앞서 그래미가 신설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이 지목된다. 이 부문은 K팝뿐 아니라 J팝, C팝 등 아시아권 대중음악을 한데 묶어 시상하며, 후보가 되려면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유의미하게 사용한 곡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표면적으로는 커진 K팝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주류 부문에서 겨루지 말고 별도 칸에서 상을 받으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BTS가 밝힌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라는 문장은, 바로 이 신설 부문을 겨눈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미는 ‘올해의 레코드·앨범·노래’ 등 수상 부문 전체를 아우르는 제너럴 필드와, 장르별로 나뉘는 장르 필드를 함께 운영한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아시아 음악을 장르 필드 한 칸에 몰아넣는 것이 인정인가, 분리인가’라는 물음이다.
‘인정의 확장’인가 ‘게토화’인가
쟁점은 명확히 갈린다. 비판하는 쪽은 공통분모가 뚜렷하지 않은 여러 나라의 음악을 ‘아시아’라는 거대한 지역 단위로 묶는 발상 자체가 서구 중심적이라고 본다. 나아가 아시아 음악을 별도 부문으로 유도하면, 오히려 ‘올해의 앨범’ 같은 주요 부문에서 수상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른바 ‘게토화’ 비판이다.
반면 그래미 측은 진화에 나섰다. 그래미 CEO는 아시안 팝 부문에 출품하더라도 제너럴 필드 출품과 심사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장르 부문에서의 인정과 제너럴 필드에서의 인정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이번 신설은 ‘분리가 아니라 확장’이라는 취지였다. 요컨대 아시안 팝 부문과 본상 도전은 양자택일이 아니라는 해명이다.
다만 이 해명이 논란을 잠재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도상 자격이 유지되더라도, ‘아시아 음악을 위한 칸’이 따로 마련되는 순간 투표자들의 관성이 그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지금, 왜 BTS인가
일부 해외 매체는 이번 결정을 선제적 방어로 읽는다. 과거 여러 시상식에서 K팝이 주요 부문 바깥으로 밀려나는 경험을 반복한 만큼, BTS가 또 한 번의 ‘변방 취급’을 당하기 전에 먼저 판을 떠났다는 분석이다. 후보 자격을 스스로 반납할 수 있는 위치, 즉 상이 아쉬운 쪽이 이제 누구인지를 되묻게 만드는 위상에 올라섰다는 점도 함께 거론된다.
물론 이번 불참이 그래미와의 영구적 결별을 뜻하는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통보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올해’, 즉 ‘아리랑’에 한정돼 있다. 그럼에도 세계 최정상 팀이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향해 던진 이 한 문장은, 시상식이 누구를 위해 어떤 칸을 만드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번 결정은 그래미 영구 보이콧인가?
아니다. BTS가 밝힌 것은 5집 ‘아리랑’을 올해 출품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향후 활동까지 못 박은 선언은 아니다. 다만 신설 부문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만큼 상징적 의미는 크다.
Q. 아시안 팝 부문에 내면 본상은 못 받나?
그래미 측은 그렇지 않다고 해명했다. 아시안 팝 부문 출품이 제너럴 필드 출품·심사 자격을 빼앗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만 실제 투표 관성에 대한 우려는 별개로 남아 있다.
Q. 다른 K팝 가수들도 동참하나?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같은 입장을 낸 팀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사안이 K팝 전반의 대응으로 번질지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