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215명 죽인 의사, 그를 멈춘 건 위조된 유언장이었다
영국 의사 해럴드 셰프먼은 환자 최소 215명을 살해하고도 20년 넘게 들키지 않았다. 사망진단서 제도의 공백과 그를 멈춘 위조 유언장, 26년 만의 제도 개혁까지 짚는다.
작성 · 검수 서동혁 · 최종 검토 2026년 9월 20일
사건 요약
- 영국 가정의 해럴드 셰프먼은 1970년대부터 1998년까지 고령 환자들을 의료용 마약으로 살해했고, 조사위원회는 최소 215명으로 추정했다.
- 20여 년의 살인은 걸리지 않았지만, 유산을 노린 위조 유언장 한 건이 그를 무너뜨렸다.
- 사망을 독립적으로 검토하는 의료심사관 제도는 그의 체포로부터 26년이 지난 2024년에야 전면 시행됐다.
해럴드 셰프먼은 영국의 가정의였다. 2000년 1월 그는 환자 15명을 살해한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국가 조사위원회는 그가 최소 215명을 죽였다고 결론지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 오래, 이렇게 많이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흉기를 든 낯선 사람이 아니라 환자들이 신뢰한 의사였기 때문이다.
해럴드 셰프먼 사건, 무슨 일이 있었나
셰프먼은 1970년대부터 1998년까지 잉글랜드 북부 소도시에서 자신이 돌보던 고령 환자들에게 의료용 마약을 과다투여해 살해한 가정의다. 피해자 다수는 홀로 사는 고령 여성 환자였다. 그는 왕진이나 진료 도중 치사량의 디아모르핀(의료용 헤로인 계열 약물)을 투여한 뒤, 스스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고 진료기록을 환자가 원래 위중했던 것처럼 고쳐 두었다. 죽음은 자연사로 기록됐고, 고령 환자의 죽음은 누구도 되돌아보지 않았다.
실마리는 1998년 여름에 나왔다. 전직 시장을 지낸 81세 환자 케슬린 그런디가 사망한 직후, 그녀가 전 재산을 셰프먼에게 남긴다는 유언장이 등장했다. 그런디의 딸 앤절라 우드러프는 변호사였다. 딸은 어머니의 평소 성향과 문서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문제를 제기했고, 부검이 이뤄졌다. 매장돼 있던 시신에서 디아모르핀이 검출됐다.
경찰은 셰프먼을 1998년 9월 체포했다. 위조된 유언장은 그가 가진 타자기와 일치했다. 수사가 다른 사망 사건으로 번지면서 같은 방식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2000년 1월 31일 배심은 살인 15건과 문서위조를 유죄로 인정했고, 법원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셰프먼은 2004년 1월 수감 중 사망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셰프먼은 어떻게 20년 넘게 들키지 않았나
죽음의 원인을 판정하고 서류로 확정하는 권한이 살인자 본인에게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셰프먼은 자신이 죽인 환자의 사망진단서를 자신이 작성했다. 사망 원인을 정하는 사람과 사망을 일으킨 사람이 같았다.
화장 절차의 이중 확인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셰프먼 조사위원회는 화장을 위한 서류에 다른 의원의 의사가 두 번째로 서명하도록 돼 있었지만, 그 검토가 형식적이었고 독립적이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시신이나 기록을 실제로 다시 들여다보지 않은 채 서명이 이뤄졌다. 화장이 끝나면 물증은 사라진다.
피해자 구성도 은폐를 도왔다. 홀로 사는 고령 환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가족이나 동료의 눈에 이상 신호로 잡히지 않는다. 특정 의사의 환자에게서 사망이 유난히 잦다는 통계적 이상을 상시로 들여다보는 장치도 없었다. 결국 시스템 전체가 ‘의사는 환자를 죽이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고, 그 신뢰가 그대로 방패가 됐다.

215명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못하나
법정에서 유죄가 확정된 것은 15건뿐이고, 215명은 조사위원회의 추정이다. 화장으로 물증이 사라진 사건이 많아 개별 입증이 애초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숫자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사건의 하한선에 가깝다.
재판관 재닛 스미스가 이끈 셰프먼 조사위원회는 그의 진료 이력 전반에서 888건의 사망을 검토했다. 위원회는 최소 215명을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고, 많게는 250명 안팎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케슬린 그런디가 매장돼 부검이 가능했던 것은 오히려 예외였다. 대부분은 화장돼 다시 물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것은 범인을 못 찾은 미제와는 다른 종류의 공백이다. 범인은 특정됐지만, 그가 저지른 일의 규모는 증거가 사라진 자리에 통계적 추정으로만 남았다. 법의학이 답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가 이 숫자 안에 그어져 있다. 215라는 수치를 읽을 때는, 그것이 ‘확인된 최소치’라는 성격을 함께 읽어야 한다.
200명 넘게 죽인 그를 멈춘 건 왜 위조 유언장이었나
20여 년의 살인은 걸리지 않았지만, 유산을 노린 문서 위조 한 건이 그를 무너뜨렸다. 그를 멈춘 것은 정교한 수사가 아니라 유족의 의심과 우연이었다.
여기서 그의 행동 구조가 드러난다. 셰프먼은 사망진단서를 손수 조작할 만큼 통제된 방식으로 20년 넘게 살인을 이어갔다. 그러나 재산을 가로채려는 탐욕 앞에서는 그 통제가 무너졌다. 필적과 성향이 맞지 않는 유언장은 딸이 변호사만 아니었어도 그냥 넘어갔을 수 있는 문서였다. 통제된 살인과 통제되지 않은 탐욕이 한 사람 안에서 갈라진 지점이 바로 검거의 실마리가 됐다.
정교한 수사가 아니라 범인 자신의 흔적이 사건을 여는 일은 드물지 않다. 30년을 숨어 지낸 미국의 연쇄살인범 BTK를 무너뜨린 것도 그가 스스로 보낸 플로피디스크였다. 다만 셰프먼의 경우, 그를 세운 것이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우연이었다는 점이 더 무겁다. 제도가 걸러내지 못한 죽음을 걸러낸 것은 한 유족의 직감이었다.
사형이 아닌 종신형, 그리고 26년 뒤에야 바뀐 제도
영국은 이미 사형을 폐지한 상태였기에 그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았고, 죽음을 검증하는 제도는 그의 체포로부터 26년이 지나서야 전면 시행됐다. 제도는 사건 하나로 곧장 바뀌지 않았다.
조사위원회는 2003년 제3차 보고서에서 기존 사망 검증 절차가 혼란스럽고 부실하다고 지적하며, 가정의가 작성한 모든 사망에 대해 독립적인 검토를 의무화할 것을 권고했다. 그 권고가 실제 제도로 자리 잡기까지는 다시 20년이 걸렸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2024년 9월부터 검시관이 조사하지 않는 모든 사망을 독립 의료심사관이 다시 살피도록 의무화했다. 주치의 한 사람의 서명만으로 죽음의 원인이 확정되던 구조가 그제야 닫혔다.
| 시점 | 내용 |
|---|---|
| 1975~1998 | 조사위가 셰프먼의 살인 기간으로 추정한 시기 |
| 1998.9 | 위조 유언장 발각 후 셰프먼 체포 |
| 2000.1 | 살인 15건·문서위조 유죄, 가석방 없는 종신형 |
| 2003.7 | 조사위 제3차 보고서, 사망 검증 개혁 권고 |
| 2004.1 | 셰프먼 수감 중 사망 |
| 2024.9 | 잉글랜드·웨일스, 독립 의료심사관 검토 전면 시행 |
1998년의 체포와 2024년의 제도 시행 사이에는 26년이 놓여 있다. 이 간격은 제도가 사건의 충격만으로 메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를 밝히는 데는 유족의 의심 하나로 충분했지만, 그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데는 수십 년의 행정과 정치적 의지가 필요했다.
내가 보는 이 사건
여기서부터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내 판단이다. 셰프먼 사건의 핵심은 한 사람의 악의가 아니라, 죽음을 아무도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구조라고 본다. 흉기와 도주가 없는 살인은 시스템이 스스로를 의심할 때에만 드러난다.
한국에 겹쳐 보면 불편한 지점이 있다. 한국도 사망진단서는 대개 담당 의사가 발급하고, 화장률이 매우 높으며, 모든 자연사를 상시로 재검토하는 독립 검시 체계는 자리 잡혀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셰프먼 같은 방식이 시도됐다면 한국에서도 상당 기간 숨겨졌을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학부 때 지역 검찰청에서 사건 기록을 정리하며, 서류 한 장이 사실을 만든다는 것을 봤다. 셰프먼이 20년 넘게 손수 써낸 사망진단서가 바로 그 서류였다.
다만 같은 규모가 그대로 반복될 가능성은 낮게 본다. 근거는 처방을 사후에 추적하는 그물이 과거 영국보다 촘촘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마약류 처방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특정 의료인의 마약류 취급에서 나타나는 통계적 이상은 당시 영국보다 포착되기 쉽다. 물론 나는 수사기관에 몸담은 적이 없고 영국 보건 제도를 현장에서 본 것도 아니다. 판결문과 조사위 보고서라는 문서로 이 사건을 읽었을 뿐이라는 한계는 분명히 해 둔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제도가 신뢰를 검증으로 대체하지 못하면, 가장 안전해 보이는 자리가 가장 위험한 자리가 된다. 셰프먼이 남긴 교훈은 특정 직업을 의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검증 없는 신뢰를 의심하라는 것이다.
제도의 눈으로 보면 신호는 통계에 있다. 특정 의료인의 환자에게서 반복되는 이상 사망, 왕진이나 재택 사망의 유별난 비율, 처방된 마약류의 흐름을 상시로 들여다보는 장치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개인의 눈으로 보면, 홀로 지내던 가족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인과 서류를 유족이 확인할 권리와 통로가 얼마나 열려 있느냐가 중요하다.
셰프먼 이후 잉글랜드·웨일스가 도입한 의료심사관 제도의 요지는 단순하다. 죽음을 확정하는 사람과 그 죽음에 관여한 사람을 분리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어느 사회의 사망 검증 논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이 사건은 흔한 의미의 범죄 실화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로 읽어야 한다. 누가 죽음을 확정하는가, 그 확정을 누가 다시 검증하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이 비어 있으면, 같은 공백은 형태를 바꿔 언제든 다시 나타난다.
자주 묻는 질문
- Q. 해럴드 셰프먼은 몇 명을 죽였나? — 법정에서 유죄가 인정된 것은 15명이다. 이후 셰프먼 조사위원회는 최소 215명, 많게는 250명 안팎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다. 화장 등으로 물증이 사라져 정확한 수는 확정되지 않았다.
- Q. 어떻게 검거됐나? — 한 고령 환자의 위조된 유언장을 변호사인 딸이 의심하면서다. 부검에서 의료용 마약 성분이 검출됐고, 위조 문서가 그의 타자기와 일치했다.
- Q. 왜 사형이 아니라 종신형인가? — 영국은 이미 사형을 폐지한 상태였다. 그는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2004년 1월 수감 중 사망했다.
- Q. 이 사건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 — 조사위 권고에 따라 잉글랜드·웨일스는 사망을 독립적으로 검토하는 의료심사관 제도를 도입해 2024년 9월 전면 시행했다. 주치의 한 사람의 서명만으로 사망 원인이 확정되던 구조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