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소년 사건, 11년 만에 나온 유골이 남긴 타살의 벽
1991년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부터 2002년 유골 발견, 타살·저체온사 논쟁과 2006년 공소시효 만료까지, 35년째 미제로 남은 사건을 사실 위주로 정리했다.
작성 · 검수 서동혁 · 최종 검토 2026년 8월 9일
1991년 3월 26일 대구 와룡산으로 올라간 초등학생 다섯 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11년이 지난 2002년 9월, 도토리를 줍던 시민이 유골을 발견했다. 발견 지점은 마을에서 멀지 않았고, 그동안 수색이 여러 차례 훑고 지나간 범위 안이었다.
이 사건이 여전히 미제인 이유는 단서가 없어서가 아니다. 뼈가 분명한 말을 했는데도 그 말을 어떻게 읽을지를 두고 판단이 갈렸기 때문이다.
1991년 3월 26일, 무슨 일이 있었나
그날은 지방자치 선거로 지정된 임시공휴일이었다. 대구 달서구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우철원(13)·조호연(9)·김영규(11)·박찬인(10)·김종식(9)군은 아침에 “도롱뇽 알을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개구리소년’이라는 이름은 이 말이 언론을 거치며 굳어진 별칭이다.
| 시점 | 전개 |
|---|---|
| 1991.3.26 | 성서초 학생 5명, 와룡산으로 향한 뒤 실종 |
| 1991~2001 | 전국 규모 수색·수사 반복, 단서 확보 실패 |
| 2002.9.26 | 도토리를 줍던 시민이 와룡산에서 유골 발견 |
| 2002~2003 | 경북대 법의학팀 감식, 두개골 손상 등 ‘타살’ 소견 |
| 2006.3.25 | 살인 공소시효(당시 15년) 만료 |
| 2019~ | 대구경찰청 장기미제팀 재수사 착수 |
수사와 수색에는 연인원 35만 명 규모의 군·경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상금은 4200만 원, 전단은 1000만 장 단위로 뿌려졌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수색 범위 안에서 11년 뒤에 나왔다.

11년 된 뼈가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법의학이 백골에서 읽어내는 것은 연부조직이 남아 있을 때와 다르다. 사망 원인 중 질식이나 중독처럼 뼈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11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실상 확인할 수 없다. 반대로 뼈에 남는 손상은 오래 견딘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구분이 생전 손상과 사후 손상이다. 살아 있을 때나 사망 무렵에 생긴 골절은 뼈에 수분과 탄력이 남아 있어 파단면이 비스듬하고 매끄럽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오래 매장된 뒤 압력이나 토양 이동으로 생긴 손상은 뼈가 마른 상태에서 부서지므로 파단면이 직각에 가깝고 거칠다. 색조도 다르다. 사후에 깨진 면은 주변 뼈보다 밝다.
경북대 법의학팀이 다섯 구 가운데 3구 이상의 두개골에서 확인했다고 밝힌 것은 ‘사망 당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인위적 손상’이었다. 이 표현은 위의 판독 기준을 거쳤다는 뜻이다. 매장 중에 생긴 자연적 파손과는 구분된다는 판단이었다.
‘끝이 사각형인 예리한 물체’라는 소견
법의학팀이 밝힌 손상의 형태는 구체적이다. 끝이 사각형인 예리한 물체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서술은 흉기의 성격을 좁힌다. 둔기는 넓은 면으로 힘을 전달해 함몰이나 방사형 골절을 만든다. 칼 같은 예기는 얇고 긴 절창을 남긴다. ‘끝이 사각형인 예리한 물체’는 그 중간에 해당한다. 단면이 각진 금속 봉이나 공구류가 이런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흉기가 특정된 것은 아니고, 남은 흔적의 형태에서 역산한 추정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 곳’이라는 대목이다. 한 번의 충격은 사고로도 설명될 수 있지만 반복된 손상은 그렇지 않다. 넘어지거나 추락해서 같은 형태의 흔적이 여러 곳에, 그것도 여러 사람에게 남을 확률은 매우 낮다. 법의학팀이 타살로 결론 내린 근거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저체온사 가설이 넘지 못한 벽
초기 수사 라인 일부에서 제기된 가설은 아이들이 산에서 길을 잃고 저체온으로 숨졌다는 것이었다. 유골과 함께 묶인 채 발견된 옷가지에 대해서도 추위를 피하려 스스로 묶은 것이라는 설명이 따랐다.
이 가설이 넘어야 할 벽은 세 가지다. 첫째, 저체온사는 뼈에 손상을 남기지 않는다. 두개골 손상이 실재한다면 저체온사만으로는 그 손상을 설명할 수 없다. 사인이 저체온이었다 해도 그 전에 가해 행위가 있었다는 뜻이 된다.
둘째, 기온이다. 유족과 법의학팀은 실종 당일 기온이 사망에 이를 만큼 낮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3월 하순의 낮 시간대에 건강한 아동 다섯 명이 모두 저체온으로 사망하려면 젖은 옷이나 강풍 같은 추가 조건이 필요하다.
셋째, 옷의 상태다. 저체온사에서는 사망 직전 체온 조절이 무너지며 오히려 옷을 벗는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보고돼 있다. 저체온 사망자가 옷을 벗은 채 발견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은 이유다. 옷을 벗는 방향과 묶는 방향은 반대다. 이 차이가 저체온사 가설의 설명력을 약하게 만든다.
다만 이 사건의 사인은 지금도 공식적으로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서로 다른 판단이 맞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건의 쟁점이며, 어느 한쪽을 단정하는 것은 이 글의 역할이 아니다.
다섯 명을 한꺼번에 통제한다는 것
행동 분석에서 이 사건이 특이한 것은 피해자가 다섯 명이라는 점이다. 13세부터 9세까지, 서로 아는 사이인 아이들이다. 이들을 동시에 통제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다섯 명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통상 고려되는 것은 두 방향이다. 하나는 흉기나 위협으로 저항 의사를 꺾는 경우, 다른 하나는 가해자가 복수인 경우다. 또 하나 남는 가능성은 아이들이 처음에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따라간 경우다. 이 경우 가해자는 아이들이 경계하지 않을 만한 인물이었을 수 있다.
세 가지 중 어디에 무게를 둘지는 남은 흔적으로 좁혀볼 수 있다. 흉기로 위협해 다섯을 몰고 갔다면 그 과정에서 이탈 시도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13세 아이가 있었고,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한 명이라도 달아나 신고했다면 사건의 양상이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정황이 남지 않았다는 것은 초기 단계에서 아이들이 위협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높인다.
내가 보는 이 사건
여기서부터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내 판단이다. 나는 수사기관에 몸담은 적이 없다. 미국에서 형사사법을 공부했지만 그 전공으로 일해 본 적은 없고, 이 사건도 판결과 보도로만 접했다. 그래서 아래는 밖에서 오래 들여다본 사람의 읽기이지 결론이 아니다.
내 판단으로는 이 사건은 처음부터 살해를 목적으로 설계된 범행에 가깝지 않다. 근거는 흉기의 성격이다. 끝이 사각형인 예리한 물체는 살해를 위해 준비하는 도구가 아니다. 작업용 공구나 그 자리에 있던 물건에 가깝다. 살해를 계획하고 산에 올라간 사람이라면 더 확실한 도구를 가져갔을 것이다.
다섯 명이 저항 흔적 없이 통제됐다는 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나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접근했거나 따라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그 산과 그 시간대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낯선 침입자보다 그 공간의 일부처럼 보이는 사람 쪽이다.
그래서 내가 그리는 흐름은 이렇다. 아이들이 경계 없이 접근한다. 어떤 이유로 상황이 틀어진다. 처음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그 지점에서 통제가 무너지고, 목격자가 다섯이라는 사실이 되돌릴 수 없는 조건이 된다. 한 명을 어떻게 하든 나머지 넷이 남는다. 이 구조가 사건을 그 규모로 키웠다고 본다.
발견 지점도 이 읽기와 어긋나지 않는다. 35만 명이 훑은 범위 안에서 11년 뒤에 나왔다면, 나는 수색이 놓쳤다기보다 그 사이 어느 시점에 그 자리로 옮겨졌을 가능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둔다. 유족과 법의학팀이 같은 취지의 의견을 낸 것도 이 대목이다. 물론 초기 수색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확정할 근거는 내게 없다.
여기서 분명히 선을 긋는다. 이런 추론은 가능성의 범위를 좁히는 도구이지 특정 인물을 지목하는 근거가 아니다. 이 사건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지목이 온라인과 방송을 통해 반복돼 왔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가 생겼다. 내가 위에 쓴 것도 물증이 아니라 해석이며, 현장을 아는 사람은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남는 질문
가장 무거운 것은 시간이었다. 유골이 발견된 2002년은 실종으로부터 11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살인죄 공소시효는 2006년 3월 25일 만료됐다. 2015년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이미 시효가 지난 사건에는 소급되지 않는다. 범인이 특정돼도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남는 질문이 있다. 35만 명이 훑은 범위 안에서 왜 11년 뒤에 발견됐는가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데 수색이 놓친 것인지, 아니면 이후에 그 자리로 옮겨진 것인지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달라진다. 유족과 법의학팀이 다른 곳에서 숨진 뒤 옮겨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2019년부터 대구경찰청 장기미제수사팀이 재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처벌이 불가능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는 하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까지가 남은 몫이기 때문이다.
학부 시절 지역 검찰청에서 인턴을 하며 오래된 사건 기록을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 배운 것은 기록이 사람보다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과 함께 바뀌지만 그때 남긴 종이는 바뀌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 뼈가 그 역할을 했다. 11년을 땅에 있다가 나와서, 아이들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남은 것은 그 말을 어떻게 읽느냐다. 그리고 그 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주 묻는 질문
- Q. 왜 ‘개구리소년’으로 불리나? — 아이들이 “도롱뇽 알을 잡으러 간다”며 나섰는데, 이 말이 언론을 거치며 ‘개구리’로 굳어진 별칭이다.
- Q. 타살로 판단한 근거는? — 경북대 법의학팀이 다섯 구 중 3구 이상의 두개골에서 사망 당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인위적 손상을 확인했다. 끝이 사각형인 예리한 물체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는 소견이다.
- Q. 공소시효가 지났는데 범인을 찾으면 처벌할 수 있나? — 어렵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2006년 만료됐고 2015년 태완이법은 이미 시효가 끝난 사건에 소급되지 않는다.
- Q. 지금도 수사가 진행 중인가? — 2019년부터 대구경찰청 장기미제수사팀이 재수사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벌보다 진상 규명에 무게를 둔 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