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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실화

그것이 알고싶다 ‘살인병동 527’, 36주 낙태가 살인이 된 이유

그것이 알고싶다 1504회 '살인병동 527'이 다룬 36주 낙태 사건과 527명 장부, 낙태죄 입법 공백이 만든 회색지대와 1심 판결을 짚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살인병동 527', 36주 낙태가 살인이 된
그것이 알고싶다 '살인병동 527', 36주 낙태가 살인이 된

작성 · 검수 윤재경 · 최종 검토 2026년 9월 13일

실화 한줄평

  • 2024년 '임신 36주 낙태' 브이로그에서 시작된 사건이 한 산부인과의 527명 장부로 번진 과정을 추적한 회차다.
  • 1심 재판부는 살인죄를 적용하면서도 사회적·법적 보호 조치 미흡을 함께 지적하며 국가 책임을 언급했다.
  •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6년째 이어진 입법 공백이 고주수 임신중지 음성시장의 조건이 됐다.

9월 12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1504회는 ‘살인 병동, 527 — 은밀한 낙태 비즈니스’를 다뤘다. 2024년 6월 한 유튜버가 올린 ‘임신 36주 낙태’ 브이로그에서 시작된 사건이, 한 산부인과에서 나온 527명의 장부로 번지는 과정을 추적한 회차다. 방송은 영상의 당사자인 산모의 첫 카메라 인터뷰를 담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 문제로 좁혀지지 않는다. 임신중지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상태로 방치된 6년의 입법 공백이, 어떻게 고주수 임신중지를 알선하는 ‘시장’을 만들어냈는지가 이 회차의 핵심이다. 아래에서는 방송이 짚은 사실과, 방송이 시간상 미처 담지 못한 맥락을 나누어 정리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살인병동 527’은 어떤 사건인가

한 유튜버의 ‘임신 36주 낙태’ 영상에서 시작해, 한 산부인과의 고주수 임신중지 알선 구조가 드러난 사건이다. 2024년 6월 20대 여성 A씨가 만삭에 가까운 임신 36주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다는 브이로그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영상이 확산되며 논란이 커지자 보건복지부가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같은 해 9월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 과정에서 해당 병원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2년간 수술을 받은 산모 527명의 이름과 지급 금액이 적힌 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임신 28주가 넘는 고주수 산모가 110명에 달했다는 것이 방송이 제시한 수치다. 하나의 브이로그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반복되어 온 영업의 한 사례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찰은 약 1년의 수사 끝에 태아가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온 뒤 사망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고, 2025년 7월 병원장 윤 모(80대)씨와 집도의 심 모(60대)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 산모 A씨에게도 같은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송치됐다. 환자를 알선하고 대가를 챙긴 브로커들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따로 입건됐다.

그것이 알고싶다 '살인병동 527', 36주 낙태가 살인이 된 이유

낙태죄 입법 공백은 왜 이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했나

임신중지를 규율하는 법이 사실상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임신중지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던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말까지 대체입법을 하라고 국회에 주문했다. 그러나 허용 주수를 둘러싼 이견으로 개정안은 모두 폐기됐고, 시한이 지나면서 처벌 조항은 효력을 잃었다.

그 결과 임신중지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지대’에 6년 가까이 놓여 있다. 어느 주수까지, 어떤 절차로, 누가 시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다. 안전한 시술을 제도 안에서 받을 통로가 막혀 있으니, 고주수처럼 위험이 큰 시술일수록 음성적인 경로로 몰릴 수밖에 없다. 방송이 추적한 알선 구조는 바로 이 공백을 파고든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대체로 허용 주수와 예외 사유를 법으로 정해 두고 있다. 기준선이 있다는 것은, 그 선을 넘는 시술을 통제할 근거도 함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그 선 자체가 없어, 통제할 근거도 보호할 근거도 동시에 사라진 상태에 가깝다.

국가 본인 요청에 따른 허용 주수 이후 단계
프랑스 임신 14주까지 이후 의학적 사유 등에서 예외 허용
독일 수정 후 12주 이내 산모 건강 위험·태아 중대 질환 시 허용
영국 통상 24주 미만(두 의사 판단) 산모 생명 위험 등 예외
한국 법정 기준 없음(입법 공백) 규율 근거 부재
그것이 알고싶다 '살인병동 527', 36주 낙태가 살인이 된 이유

왜 ‘낙태’가 아니라 ‘살인’으로 판단됐나

태아가 산모의 몸 밖으로 나왔을 때 살아 있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법에서 임신중지와 살인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사람’이 되었는가다. 통상 분만 과정에서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온 시점을 사람의 시작으로 보는데, 그 이후의 생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이는 임신중지가 아니라 살인의 문제가 된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태아가 분만 과정에서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고, 출생 이후의 사망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했다. 2026년 3월 선고에서 병원장 윤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11억여 원의 추징을, 집도의 심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것으로 보도됐다. 산모 A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최종 판단은 상급심을 지켜봐야 한다.

주목할 점은 재판부가 국가의 책임을 함께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보도에 따르면 재판부는 사회적·법적 보호 조치가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선하려 했다면 이 사건은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는 취지로 밝혔다. 피고인의 형사책임과 별개로, 제도의 공백이 사건의 조건이었음을 법정이 인정한 셈이다.

527명 장부와 브로커, 돈은 어디로 흘렀나

환자를 연결하는 브로커가 있었고, 고주수일수록 큰 대가가 오간 정황이 드러났다. 방송과 수사기관이 제시한 장부에는 2년간 527명의 산모와 지급액이 적혀 있었고, 이 중 상당수가 통상적인 시술 시점을 크게 넘긴 고주수였다. 개별 산모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를 하나의 명단으로 묶어 관리했다는 점에서 조직적인 영업의 성격이 드러난다.

검찰은 병원에 환자를 알선하고 3억 원이 넘는 대가를 챙긴 브로커들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적인 의료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알선 단계가 끼어 있었다는 것은, 이 시술이 공개된 의료 시스템 밖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음지에서 이뤄질수록 가격은 오르고,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다.

돈의 흐름을 따라가면 수요와 공급이 함께 보인다. 고주수 시술을 원하는 절박한 수요가 있었고, 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 공급이 그 수요를 상대로 이익을 취했다. 알선 대가가 붙는 구조에서는 시술 자체의 위험이 클수록 값이 오르는 역설이 생긴다. 가장 안전하게 다뤄져야 할 고주수 시술이 가장 비싸고 가장 은밀하게 거래된 것은, 시장이 안전이 아니라 은폐에 값을 매겼기 때문이다. 아래 시간선은 하나의 영상이 어떻게 형사사건으로, 다시 방송으로 이어졌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시점 내용
2024년 6월 ‘임신 36주 낙태’ 브이로그 유튜브 공개, 논란 확산
2024년 9월 보건복지부 수사 의뢰 후 경찰 본격 수사 착수
2025년 7월 병원장·집도의 살인 혐의 구속 송치, 산모 불구속 송치
2026년 3월 1심 선고(병원장 징역 6년, 집도의 4년, 산모 집행유예)
2026년 9월 ‘그것이 알고싶다’ 1504회 방송, 장부·산모 인터뷰 공개

방송이 다루지 않은 것 — 안전한 합법 경로의 부재

이 회차가 상대적으로 덜 비춘 것은, 고주수 시술을 찾은 여성들이 애초에 왜 음성 시장으로 향했는가 하는 수요의 배경이다. ‘살인 병동’이라는 제목은 공급자의 범죄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그러나 장부에 이름을 올린 산모들 상당수는 늦게 임신을 인지했거나, 태아의 중대한 이상을 뒤늦게 알았거나, 경제적·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그간의 관련 보도에서 반복돼 온 지점이다.

한 시간짜리 방송에는 취재의 몇 배가 들어가고, 편집에서 잘려 나가는 것 중에 중요한 게 많다. 나는 시사교양 자료조사원으로 일하던 시절, 가해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수요의 복잡한 사정을 담은 장면보다 먼저 살아남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그것은 제작진의 게으름이 아니라 한 시간이라는 형식의 한계다.

문제는 이 공백이 방치되면, 합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정과 명백히 통제되어야 할 범죄가 같은 음지에 뒤섞인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불가피한 후기 임신중지를 제도 안에서 안전하게 받을 통로가 있었다면, 이 장부의 상당 부분은 애초에 존재할 이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공급자의 처벌만으로 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보는 이 회차

여기서부터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내 판단이다. 나는 이 회차의 진짜 무게가 ‘누가 나쁜가’보다 ‘무엇이 이 일을 반복 가능하게 했는가’에 있다고 본다. 근거는 1심 재판부의 언급이다. 형을 선고한 법정이 국가의 보호 조치 미흡을 함께 지적했다는 것은, 이 사건이 개인의 악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사법부가 스스로 남겼다는 뜻으로 읽힌다.

반대로, 입법 공백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법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 분만 이후의 생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 선은 입법 공백과 무관하게 이미 형법이 긋고 있는 선이다. 제도의 책임과 개인의 책임은 함께 물어야 하는 것이지, 하나로 다른 하나를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한계도 밝혀 둔다. 나는 제작 현장을 떠난 지 오래고, 방송에 담기지 않은 취재 원본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산모 인터뷰가 어떤 맥락에서 촬영됐는지, 어디까지가 편집의 결과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이 사건을 공급자 처벌로 닫아 버리면, 다음 장부가 어딘가에서 다시 쓰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만은 낮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이 남았나

남는 것은 처벌 이후의 공백이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지만, 임신중지를 규율할 법은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형사사건 하나가 마무리되어도, 그 사건을 낳은 회색지대는 그대로다. 제도의 공백이 범죄의 조건이 된 사례는 이 사건만이 아니다. 감독의 빈자리가 남긴 공백은 다른 얼굴로 반복돼 왔다.

우리가 봐야 할 신호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체입법의 향방이다. 허용 주수와 예외 사유, 안전한 시술 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음성 시장의 크기가 달라진다. 다른 하나는 후기 임신중지의 의학적·사회적 사유를 제도가 어떻게 받아 안을 것인가다. 보호받아야 할 사정과 통제되어야 할 범죄를 구분하는 기준이 없으면, 둘은 계속 같은 음지에 섞인다.

방송은 하나의 사건을 세상에 다시 꺼냈다. 그 사건이 던진 질문에 답하는 것은 이제 법정이 아니라 입법의 몫이다. 그 답이 미뤄지는 동안 장부는 다시 쓰일 수 있다는 것, 이 회차가 남긴 가장 무거운 문장은 거기에 있다.

자주 묻는 질문

  • Q. 왜 임신중지가 아니라 살인 혐의가 적용됐나? — 법은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온 시점부터 ‘사람’으로 본다. 1심 재판부는 태아가 분만 과정에서 살아 있었다고 판단해, 출생 이후의 사망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했다.
  • Q. 지금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인가? —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처벌 조항이 효력을 잃어, 임신중지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상태다. 허용 주수나 절차를 정한 대체입법이 아직 없어 6년 가까이 법적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 Q. 장부에 이름이 오른 527명도 처벌받나? —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며, 개별 사정에 따라 판단이 갈린다. 방송은 이들 다수가 고주수 시술을 음성 경로로 찾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주목했다.
  • Q. 산모와 병원 측은 어떤 처벌을 받았나? — 1심에서 산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병원장과 집도의에게는 각각 징역 6년과 4년이 선고된 것으로 보도됐다.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