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살인마로 의심하는 아빠,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던진 서늘한 질문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자신의 딸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하며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 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관전 포인트와 시청 가이드를 분석한다.
한줄평
- 한석규의 29년 만의 MBC 복귀작이 증명한 압도적인 장르적 몰입감
- 가장 가까운 가족을 향한 의심이 피워내는 질식할 듯한 심리전
- 자극적인 액션 대신 미세한 표정과 빛의 대비로 완성한 세련된 연출
- 도파민 터지는 사이다 전개에 지친 이들을 위한 웰메이드 스릴러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가족’은 오랫동안 절대적인 성역이자 따뜻한 안식처로 기능해 왔다.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도 가족은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대상이거나, 복수의 원동력으로 소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안방극장을 서늘하게 물들인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이 뻔한 공식을 산산조각 낸다.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자신이 쫓고 있는 끔찍한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의 고등학생 딸을 의심하게 된다면 어떨까. 이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은,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물리적 폭력 없이도 시청자의 숨통을 옥죄는 데 성공했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사이다’ 전개와 숏폼형 자극이 범람하는 시대에, 이토록 무겁고 진득한 심리 스릴러가 어떻게 대중의 시선을 낚아챘는지 그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이야기인가
주인공 장태수(한석규 분)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범죄 행동 분석관이다. 범죄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정작 자신의 가정은 산산조각 난 상태다.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키우고 있는 고등학생 딸 하빈(채원빈 분)과의 관계는 건조함을 넘어선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태수가 투입된 가출 팸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딸 하빈의 흔적이 발견된다. 평범한 아버지라면 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겠지만, 직업적 본능과 과거의 어떤 트라우마에 얽매인 태수는 딸을 향해 의심의 촉수를 뻗기 시작한다.
드라마는 사건의 진범을 찾는 흔한 ‘후던잇(Whodunit)’의 구조를 띠고 있지만, 그 속을 채우는 것은 지독한 심리전이다. 아빠의 의심을 눈치챈 딸 하빈은 두려워하거나 억울해하기는커녕, 알 수 없는 미소와 거짓말로 아빠의 심리를 교묘하게 찌르고 흔든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살인 사건의 진실이라는 외피 속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숨겨두었다. 진실을 파헤칠수록 부녀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시청자는 누구의 시선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래서 특별하다
이 작품이 특별한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연기의 격’이다. 29년 만에 MBC로 귀환한 한석규는 명불허전이라는 수식어조차 부족할 만큼 압도적인 화면 장악력을 보여준다. 딸을 의심하면서도 그 의심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처절한 내적 갈등을, 그는 미세하게 떨리는 눈꺼풀과 호흡의 간극만으로 설득해 낸다. 이에 맞서는 신예 채원빈의 활약도 놀랍다. 속을 알 수 없는 서늘한 눈빛으로 대선배 한석규의 기에 밀리지 않고 팽팽한 텐션을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송연화 감독의 연출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감독은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대사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공간의 여백과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활용해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태수와 하빈이 마주 앉은 식탁 씬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극단적으로 멀게 잡거나, 한 사람의 얼굴을 짙은 그늘 속에 가려버리는 식이다. 이러한 미장센은 부녀 사이의 단절과 의심을 은유하며 극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또한, 과도한 배경음악을 배제하고 인물들의 발소리나 숨소리 같은 현장음을 강조하여 시청자가 마치 그 숨 막히는 공간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사람에게 (비추도)
밀도 높은 심리전과 치밀한 복선 회수를 즐기는 ‘장르물 마니아’라면 이 작품은 올해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들이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인드헌터’처럼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서사를 선호하는 시청자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사건의 퍼즐을 맞춰가는 지적 유희를 만끽할 수 있다.
반면, 퇴근 후 맥주 한 캔과 함께 가볍게 머리를 식힐 드라마를 찾는 이들에게는 권하기 어렵다. 고구마 먹은 듯한 답답함을 단숨에 해소해 주는 통쾌한 액션이나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는 이 드라마의 목표가 아니다. 시종일관 짓누르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그리고 끊임없이 인물들의 진의를 의심해야 하는 피로감은 시청자에 따라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작품
이 작품의 서늘한 공기와 궤를 같이하는 웰메이드 스릴러로는 JTBC ‘괴물’을 꼽을 수 있다. 폐쇄적인 소도시를 배경으로 누가 진짜 괴물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신하균과 여진구의 숨 막히는 연기 대결이 일품인 수작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이성으로만 사건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다뤘다는 점에서는 tvN ‘비밀의 숲’ 시리즈와도 결이 맞닿아 있다. 두 작품 모두 탄탄한 각본과 연출, 배우들의 열연이 삼박자를 이룬 한국 장르물의 모범 답안들이다.
에디터의 별점과 한줄평
★ 4.5/5
가장 가까운 타인을 향한 지독한 의심, 그 혹독한 대가를 그려낸 한석규의 경이로운 심리 해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