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 찍힌 발자국은 집 안으로만 향했다: 1922년 힌터카이페크 미스터리
1922년 독일 바이에른주의 외딴 농장 힌터카이페크에서 일가족 6명이 참혹하게 살해됐다. 범인은 사건 후에도 며칠간 농장에 머물며 가축을 돌봤다. 끝내 풀리지 않은 단서들을 되짚어본다.
미스터리 개요
- 1922년 독일 힌터카이페크 농장에서 일가족과 하녀 등 6명이 곡괭이에 살해된 채 발견됨
- 사건 발생 전, 집으로 들어오기만 하고 나간 흔적이 없는 눈밭의 발자국 등 기이한 전조가 있었음
- 범인은 살인 후에도 며칠 동안 농장에 머물며 식사를 하고 가축에게 먹이를 준 것으로 추정됨
- 이웃 로렌츠 슐리텐바우어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끝내 증거 불충분으로 미제로 남음
독일 바이에른주의 짙은 숲길을 지나다 보면 나타나는 외딴 농장, 힌터카이페크(Hinterkaifeck). 1922년 4월, 이 고요한 농장에서 인간의 짓이라고는 믿기 힘든 참혹한 광경이 발견된다. 농장주 일가족과 하녀를 포함한 6명이 헛간과 집 안에서 두개골이 함몰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잔혹한 범죄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이 사건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죄학자들과 호사가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범인이 일가족을 몰살한 뒤, 피비린내 나는 그 집에서 며칠 동안이나 버젓이 머물며 밥을 먹고 가축을 돌봤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1922년 3월의 마지막 밤, 그 외딴 농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남겨진 기이한 단서들을 따라 그날의 진실을 추적해 보자.
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의 전조는 비극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조용히, 그러나 섬뜩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1922년 3월 말, 농장주 안드레아스 그루버(Andreas Gruber)는 이웃들에게 기이한 현상들을 털어놓았다. 숲에서 농장 쪽으로 걸어온 발자국은 있는데, 다시 돌아간 발자국이 눈밭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집 안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거나 다락방에서 낯선 신문이 발견되기도 했다. 심지어 헛간 자물쇠에는 누군가 억지로 열려고 한 듯한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하지만 고립된 농장에서 평생을 거칠게 살아온 안드레아스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것이 뼈아픈 패착이었다.
3월 31일 금요일 밤. 안드레아스와 그의 아내 체칠리아, 과부 딸 빅토리아와 그녀의 7살 난 딸 체칠리아가 차례대로 헛간으로 유인되었다.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범인은 곡괭이(매톡)로 이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헛간에서 네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은 곧장 집 안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빅토리아의 2살배기 아들 요제프와,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첫 출근을 한 새 하녀 마리아 바움가르트너가 자고 있었다. 범인은 요제프의 요람과 하녀의 침실로 다가가 남은 두 사람마저 잔혹하게 살해했다. 새 하녀 마리아는 농장에 도착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며칠 뒤인 4월 4일, 농장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이웃들이 농장을 수색하면서 이 끔찍한 현장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풀리지 않는 단서들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보통의 살인범이라면 범행 직후 현장을 서둘러 벗어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힌터카이페크의 범인은 달랐다. 가장 섬뜩한 대목은 이웃들이 시신을 발견하기 전까지 며칠 동안, 농장의 굴뚝에서는 계속해서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증언이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살인을 저지른 후 부엌에서 빵과 고기를 썰어 먹고, 심지어 헛간에 있는 소와 돼지들에게 먹이까지 주며 며칠을 더 머물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피투성이가 된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는 헛간을 태연하게 오가며 가축을 돌봤다는 뜻이다.
또 다른 미스터리는 다락방의 흔적이다. 사건 발생 6개월 전, 이전 하녀는 ‘집이 귀신에 들렸다’며 다락방에서 들리는 기괴한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농장을 떠났다. 경찰은 다락방을 수사하던 중 누군가 은신했던 흔적인 짚더미와 지붕 기와를 들어 올려 밖을 내다본 자국을 발견했다. 즉, 범인은 사건 당일 외부에서 침입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 며칠 혹은 몇 달 전부터 다락방에 숨어 살며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눈밭에 찍힌 ‘들어오기만 한 발자국’은 그가 농장 안으로 숨어들었음을 알려주는 명백한 경고였던 셈이다.

제기된 가설들
첫 번째로 제기된 가설은 강도 살인이다. 당시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치안이 불안했고, 떠돌이 강도들의 범죄가 잦았다. 하지만 이 가설은 금방 힘을 잃었다. 집 안에는 상당한 양의 금화와 지폐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며칠씩 머물며 가축을 돌볼 이유도, 현금을 그대로 두고 갈 이유도 없다.
두 번째 가설은 원한에 의한 치정극이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이웃 농장의 로렌츠 슐리텐바우어(Lorenz Schlittenbauer)였다. 그는 숨진 빅토리아와 내연 관계였으며, 2살배기 요제프가 자신의 아이인지 안드레아스의 아이인지를 두고 법적 분쟁까지 벌인 바 있었다. 4월 4일 시신을 처음 발견한 수색대의 일원이었던 그는, 수색 당시 개가 짖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열쇠도 없이 헛간 문을 능숙하게 열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시신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사건 현장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하지만 그를 범인으로 단정 지을 결정적 물증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에디터의 추적 노트
수많은 기록과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이 사건은 단순한 외부인의 소행으로 보기 어렵다. 범인은 힌터카이페크 농장의 구조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고, 가축을 다루는 데 능숙했으며, 6명이나 되는 사람을 살해하고도 심리적으로 붕괴되지 않을 만큼 이 가족에게 깊은 원한이나 비틀린 집착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로렌츠 슐리텐바우어의 행동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수색 당시 슐리텐바우어는 시신이 발견되자마자 충격을 받기는커녕, ‘내 아이가 어디 있는지 봐야겠다’며 요람으로 다가갔다고 한다. 이는 이미 집 안에 요제프가 죽어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던 자의 행동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당시 경찰의 초동 수사는 엉망이었고, 현장은 이웃들에 의해 철저히 짓밟힌 뒤였다. 과학수사가 존재하지 않던 1920년대의 한계 속에서, 정황 증거만으로는 그를 단죄할 수 없었다. 결국 힌터카이페크 살인사건은 범인의 윤곽만 어렴풋이 남긴 채 영원한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다.
[세 줄 정리와 여운]
1. 1922년 독일 힌터카이페크 농장에서 일가족 6명이 잔혹하게 몰살당했다.
2. 범인은 다락방에 숨어 살며 기회를 노렸고, 범행 후에도 며칠간 가축을 돌보며 현장에 머물렀다.
3. 이웃 로렌츠 슐리텐바우어가 유력한 용의자로 꼽혔으나 끝내 증명되지 못했다.
누군가 당신의 집 다락방에 숨어 당신의 일상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면. 가장 두려운 것은 유령이 아니라,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아래 숨죽이고 있는 인간의 악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