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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드라마·영화

범죄도시 세 편은 실화를 어떻게 주먹 하나로 줄였나

추석 특선으로 다시 돌아온 범죄도시 시리즈. 세 편이 출발한 실제 사건과, 영화가 단일 악당과 주먹으로 덜어낸 현실의 무게를 나란히 짚어 봤다.

범죄도시 세 편은 실화를 어떻게 주먹 하나로 줄였나
범죄도시 세 편은 실화를 어떻게 주먹 하나로 줄였나

작성 · 검수 남우진 · 최종 검토 2026년 9월 25일

볼지 말지

  • 범죄도시 1·2·3편은 각각 서울 서남부 조직폭력, 필리핀 한인 연쇄 납치·살인, 역삼역 마약 거래라는 실제 사건에서 출발했다.
  • 영화는 조직과 네트워크의 문제를 단일 악당으로, 느리고 제도적인 수사 절차를 형사의 주먹으로 압축한다.
  • 2편 모티브가 된 필리핀 사건의 피해자 윤철완 씨는 10년 넘게 실종 상태로, 실화의 상당수는 스크린과 달리 닫히지 않았다.

이번 추석 연휴 편성표는 범죄 장르로 채워졌다. 지상파의 정규 시사·탐사 프로그램이 명절과 아시안게임 중계로 대부분 결방한 자리에, 케이블과 종편은 범죄·액션 영화를 줄지어 걸었다. 박찬욱 감독의 범죄 스릴러를 비롯한 작품이 편성표 상단을 차지했고, 명절마다 재방송 단골로 돌아오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이름도 다시 눈에 띈다. 이 프랜차이즈는 누적 관객 수만큼이나 ‘실화 모티브’라는 수식을 달고 다닌다.

나는 한때 장르 시나리오를 쓰다 접었다. 범죄물을 제대로 쓰려고 실제 사건 기록과 수사 절차를 파고들면서, 이 장르가 현실을 얼마나 매끄럽게 다듬는지 알게 됐다. ‘범죄도시’는 그 다듬는 방식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글은 작품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세 편이 각각 어떤 실제 사건에서 출발했고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동안 무엇이 덜어졌는지를 나란히 놓아 보려는 것이다. 확인된 사실과 해석은 구분해 적는다.

세 편은 모두 실제 사건에서 출발했다

범죄도시 1·2·3편은 모두 실재한 사건을 씨앗으로 삼았다. 시리즈가 허구의 영웅담처럼 보여도, 각 편의 최종 빌런과 사건 구도에는 대응하는 실제 사건이 있다. 다만 그 대응은 ‘재현’이 아니라 ‘모티브’다.

1편 — 서울 서남부의 조직폭력

1편은 2000년대 중반 서울 가리봉·구로·대림 일대에서 벌어진 조선족 조직폭력을 배경으로 삼았다. 극 중 장첸이 이끄는 집단은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한 이른바 ‘연변흑사파’의 잔혹성을 참고한 것으로 보도됐다. 기존 세력이 와해된 자리를 새 조직이 칼과 도끼를 앞세워 접수해 간 정황은 당시 여러 매체가 다뤘다. 마석도는 특정 실존 형사 한 명이 아니라, 이 일대에서 조직폭력을 검거한 여러 강력계 형사들의 활동을 합친 복합 캐릭터로 알려졌으며, 제작진은 현직 형사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관련 보도).

2편 — 필리핀 한인 연쇄 납치·살인

2편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필리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벌어진 연쇄 납치·강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발단은 2007년 국내 환전소 강도살인이었고, 주범들은 필리핀으로 도주한 뒤 현지에서 범행을 이어갔다. 보도로 확인된 규모는 살인 최소 5건, 납치·강도 16건, 피해액 약 6억 5000만 원이다. 극 중 강해상은 이 사건 주범들을 참고한 인물로, 실제 주범 중 한 명인 최세용은 무기징역이 확정됐다(보도). 피해자 가운데 전직 공군 소령 윤철완 씨는 2010년 실종된 뒤 유해조차 확인되지 않았다(보도).

3편 — 역삼역 인근의 마약 거래

3편은 2017년 12월 서울 강남 역삼역 일대에서 적발된 국제 마약 거래를 모티브로 했다. 일본 야쿠자 조직 소속 조직원과 대만 조직원이 필로폰을 거래하다 검거된 사건으로, 압수된 필로폰은 약 8kg, 시세로는 수백억 원대로 보도됐다(보도, 개요). 영화는 이 실제 거래의 얼개를 신종 마약과 야쿠자라는 설정으로 확장했다.

범죄도시 세 편은 실화를 어떻게 주먹 하나로 줄였나

현실은 악당 하나로 좁혀지지 않았다

세 사건 모두 실제로는 ‘조직’과 ‘네트워크’의 문제였지, 악당 한 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는 관객의 분노와 기대를 한 얼굴에 모아야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그래서 흑사파도, 필리핀 납치 조직도, 초국경 마약 거래도 각각 단일 인물로 수렴된다. 세 편의 빌런은 사실상 ‘조직 그 자체’를 대신하는 얼굴이다.

왜 이렇게 압축하는가.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서 관객이 추적할 수 있는 대상은 많지 않다. 조직의 분업 구조, 자금 흐름, 국내 모집책과 현지 실행조의 분리 같은 요소는 스크린에서 인지 부하만 키운다. 필리핀 사건만 해도 국내에서 피해자를 유인하는 단계, 현지에서 납치·살해를 실행하는 단계, 자금을 세탁하는 단계가 나뉘어 있었다. 영화는 이 구조를 강해상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잔혹성으로 대체한다.

이 대체는 거짓말이 아니라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의 대가로, 관객은 ‘이런 인간이 나쁘다’는 결론에는 쉽게 도달하지만 ‘이런 구조가 범죄를 가능하게 했다’는 질문에는 좀처럼 닿지 못한다. 조직범죄가 개인의 악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라는 사실은, 히어로 서사와 잘 맞지 않는다.

범죄도시 세 편은 실화를 어떻게 주먹 하나로 줄였나

주먹이 대신한 자리에 원래 있던 것

영화가 마석도의 주먹으로 끝낸 장면들의 실제 자리에는, 느리고 제도적인 수사 절차가 있었다. 필리핀 사건은 형사 한 명의 활약이 아니라 국제 공조와 장기 수사의 결과로 주범들이 검거됐다. 역삼역 마약 거래 역시 강력계 형사의 현장 격투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마약 수사로 현장에서 체포로 이어졌다.

왜 영화는 이 절차를 주먹으로 바꾸는가. 절차는 영화적으로 지루하다. 영장, 관할, 국가 간 공조, 증거 능력 같은 마찰은 히어로의 즉각성과 충돌한다. 관객은 마석도가 문을 부수고 들어가 상황을 끝내는 장면에서 쾌감을 얻지, 공조 요청 공문이 오가는 몇 달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르는 이 마찰을 지운다. 지워진 마찰이야말로 실제 수사에서 가장 오래 걸리고 가장 자주 실패하는 지점이라는 사실은 화면에 남지 않는다.

범죄 장르가 실제 수사 절차를 어떻게 다루고 어디서 미끄러지는지는 다른 글에서도 짚은 적이 있다. 결국 같은 문제로 돌아온다. 현실의 수사는 개인의 능력보다 시스템의 협업에 가깝고, 그 협업은 극적이지 않다.

남은 피해자는 스크린 밖에 있다

영화는 마지막에 악당을 잡지만, 실제 사건의 상당수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2편의 모티브가 된 필리핀 사건에서 전직 공군 소령 윤철완 씨는 실종된 지 10년이 넘도록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극장을 나온 관객이 ‘해결됐다’는 감각을 갖는 동안, 유족에게 그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왜 이 간극이 중요한가. ‘실화 모티브’라는 수식은 관객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준다. 하나는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무게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야기가 스크린 안에서 종결됐다는 안도감이다. 문제는 두 번째다. 영화적 종결은 실제 사건의 종결과 무관하다. 카타르시스는 픽션의 것이고, 미결은 현실의 것이다.

이 점에서 실화를 모티브로 삼는 창작은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진다. 사건을 소재로 빌려오는 순간, 그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은 창작물의 흥행과 무관하게 계속 그 자리에 있다. 영화가 사건을 ‘끝냈다’고 느끼게 만들수록, 아직 끝나지 않은 현실은 더 보이지 않게 된다.

내가 보는 범죄도시

나는 이 시리즈가 실화를 왜곡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실화의 무게를 덜어낸 자리를 장르의 쾌감으로 채웠다고 본다. 시나리오를 써 본 입장에서 그 선택은 이해된다. 러닝타임과 상업성이라는 조건 안에서, 복잡한 네트워크보다 선명한 악당이, 느린 절차보다 빠른 주먹이 관객을 움직인다.

그럼에도 남는 것은 수식의 문제다. ‘실화 모티브’는 강력한 마케팅 언어다. 그 언어를 쓰는 순간 작품은 실제 사건의 신뢰를 빌려 오지만, 그 신뢰에 값하는 책임은 대개 화면 밖에 남겨 둔다. 나는 범죄도시가 잘 만든 오락 영화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 시리즈를 ‘실화’로 기억하기보다 ‘실화에서 출발한 픽션’으로 기억하는 편이 정확하다고 본다.

가장 정직한 감상법은 아마 이럴 것이다. 마석도의 주먹에 통쾌해하되, 그 주먹이 지운 자리에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를 한 번쯤 떠올리는 것. 실제 사건의 피해자는 스크린 밖에 있고, 그들의 시간은 엔딩 크레딧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자주 묻는 질문

  • Q. 범죄도시 시리즈는 실화인가? —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창작이다. 각 편은 실재한 조직폭력·연쇄 납치·마약 거래 사건에서 출발했지만, 인물과 전개는 상당 부분 각색됐다.
  • Q. 마석도는 실존 형사를 모델로 했나? — 특정 한 명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조직폭력을 검거한 여러 강력계 형사의 활동을 합친 복합 캐릭터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현직 형사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 Q. 2편의 필리핀 사건 주범은 처벌받았나? — 실제 주범 중 한 명인 최세용은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다만 피해자 일부는 유해조차 확인되지 않아 사건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 Q. 이번 추석에 범죄도시를 볼 수 있나? — 이번 연휴에는 범죄·액션 장르 영화가 특선으로 다수 편성됐다. 채널별 정확한 방영 일시는 각 방송사 편성표를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