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격자, 범인을 잡고도 풀어줄 수밖에 없던 이유
2008년 영화 추격자를 유영철 사건과 실제 수사·형사절차에 비춰 분석한다. 범인을 잡고도 풀어주는 전개가 건드린 제도의 빈틈과 사이코패스 클리셰를 깬 지점까지.
작성 · 검수 남우진 · 최종 검토 2026년 9월 22일
볼지 말지
- 「추격자」(2008)는 유영철 연쇄살인에서 모티프를 얻었지만 인물과 전개는 크게 각색한 나홍진의 데뷔작이다.
- 범인을 잡고도 물증이 없어 풀어줄 수밖에 없는 전개는 증거주의와 구속 요건이라는 실제 형사절차의 긴장을 압축한다.
- 범인을 왜소하고 평범한 인물로 그려 '천재적 사이코패스' 클리셰를 비껴간 점이 이 작품의 성취다.
2008년 개봉한 「추격자」는 범인을 이야기 중반에 이미 붙잡는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잡힌 자가 풀려나면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범인을 알고도 왜 막지 못하는가’를 묻는 드문 범죄물이다.
이 글은 줄거리를 옮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추격자」가 유영철 연쇄살인에서 무엇을 가져오고 무엇을 버렸는지, 영화가 극적으로 부풀린 지점과 도리어 현실을 정확히 찌른 지점은 어디인지, 그리고 이 장르가 습관처럼 그리는 ‘천재 사이코패스’ 이미지를 이 작품이 어떻게 비껴갔는지를 본다. 결말의 구체적인 전개는 밝히지 않는다.
영화 추격자는 어떤 이야기인가
「추격자」는 전직 형사 출신으로 유흥업 보도방을 운영하는 남자가, 자기 밑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잇따라 연락이 끊기는 것을 쫓다가 한 남자에게 닿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돈 떼먹고 달아났다고 여긴 추적이, 곧 살인의 실마리로 바뀐다.
김윤석이 연기한 엄중호는 정의감으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자기 손해를 메우려 뛰기 시작한 사람이고, 그래서 이 영화의 추격에는 영웅적 광채가 없다.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은 붙잡힌 뒤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치는 총격전이나 반전이 아니라, 시간과 절차의 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다.
이야기는 대략 하룻밤과 그 언저리로 압축돼 있다. 범인은 비교적 이른 시점에 경찰의 손에 들어온다. 보통의 스릴러라면 여기서 사건이 닫히지만, 「추격자」는 정확히 이 지점에서 문을 다시 연다. 잡았는데 왜 붙잡아 둘 수 없는가. 영화의 심장은 추격이 아니라 이 물음에 있다.

추격자는 유영철 사건에서 무엇을 가져오고 무엇을 버렸나
영화는 2003년부터 이듬해까지 다수를 살해한 유영철 사건에서 큰 틀의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물과 전개의 상당 부분은 새로 지어낸 허구다. 실화를 그대로 옮긴 재연물이 아니다.
겹치는 것은 배경의 질감이다. 도시의 밤,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여성 피해자, 그리고 어디서나 스칠 법한 평범한 외양의 가해자. 실제 사건에서도 피해자 다수가 노인과 여성이었고, 범인은 붙잡히기 전까지 주변의 의심을 크게 사지 않았다. 영화는 이 ‘평범함이 주는 공포’를 정확히 가져왔다.
반대로 영화가 버린 것은 결과의 확정성이다. 「추격자」는 붙잡힌 여성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위에 추격의 시간을 쌓는다. 이 ‘어쩌면 늦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여지가 영화의 긴장을 지탱한다. 그러나 실제 연쇄살인 사건에서 그런 시간적 여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가 허구를 택한 것은 극적 장치이지 사실의 보고가 아니며, 이 차이를 뭉개면 실화를 오해하게 된다.

잡고도 풀어준 48시간, 영화가 건드린 진짜 제도 문제
이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대목은 추격 장면이 아니라, 붙잡힌 범인이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정해진 시간 안에 풀려나는 장면이다. 여기서 「추격자」는 허구를 넘어 실제 형사절차의 긴장을 건드린다.
우리 형사사법은 자백만으로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 구속을 하려면 범죄의 상당한 혐의와 구속 사유가 소명돼야 하고, 그 판단의 바탕은 결국 물증이다. 자백이 있어도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정해진 시한이 지나 피의자는 절차상 풀려날 수 있다. 영화는 이 구조를 하룻밤 안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초동 단계에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면, 범인을 손에 쥐고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서늘함은 스크린 밖에도 있다. 자백이나 정황은 분명한데 결정적 물증이 없어 처벌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들, 반대로 뒤늦은 과학수사로 실체가 드러난 사례들은 잡고도 벌하지 못한 이름들이라는 오래된 문제와 맞닿아 있다. 다만 영화가 이를 압축하며 과장한 부분도 분명하다. 현실에서 붙잡힌 유력 피의자가 이렇게 단순히 풀려나 곧바로 다음 범행으로 직행하는 일은 흔치 않다. 영화는 제도의 빈틈을 한 점으로 모아 관객이 그 무력함을 몸으로 느끼게 만든 것이다.
이 영화가 사이코패스 클리셰를 깬 지점
「추격자」의 범인은 카리스마 있는 천재가 아니라, 어디서나 스칠 법한 왜소하고 평범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 선택이 이 영화를 장르의 상투에서 떼어 놓는다.
범죄 스릴러는 오래 ‘천재적 괴물’의 이미지를 반복해 왔다. 관객의 지능을 앞서는 우아한 살인자, 심문실에서 형사를 가지고 노는 인물. 그러나 실제 연쇄살인범의 상당수는 그런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붙잡히기 전까지 평범해 보였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섬뜩하다. 「추격자」의 범인은 서사도, 그럴듯한 동기의 미화도 거의 부여받지 못한다. 왜 그랬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정직함이다.
나는 장르물 시나리오를 쓰다 접은 사람이라, 악당에게 매혹적인 논리를 입히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안다. 관객이 미워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천재 악당은 쓰는 사람에게도 달콤하다. 「추격자」가 그 유혹을 거절하고 범인을 끝까지 ‘별것 아닌 자’로 남겨둔 것은, 그래서 계산된 절제로 읽힌다. 다만 이 영화도 무능·부패한 경찰 조직과 각성한 개인이라는 구도만큼은 장르의 관성을 그대로 쓴다. 그 대비가 극을 밀어붙이는 힘인 동시에, 현실의 수사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이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내가 보는 이 작품
여기서부터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내 판단이다. 나는 「추격자」의 진짜 성취가 추격 액션이 아니라, 제도의 무력함을 관객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게 만든 데 있다고 본다. 근거는 이 영화가 가장 공들인 장면이 뜀박질이 아니라, 범인을 앞에 두고도 절차 앞에서 손이 묶이는 순간이라는 데 있다. 이 영화가 오래 회자되는 이유도 액션의 쾌감이 아니라 그 무력감의 잔상 때문이라고 본다.
반대로 낮게 보는 해석도 밝혀 둔다. 이 영화를 실제 수사의 교본처럼 읽는 것은 과하다. 민간인이 추격과 검거의 주체가 되는 설정, 하룻밤으로 압축된 절차, 한 점으로 모인 제도의 실패는 모두 극적 장치다. 현실의 사건은 더 느리고 덜 극적이며, 실패의 책임도 한 사람이나 한 장면에 모이지 않는다. 영화의 구도를 그대로 현실에 포갠다면, 오히려 사건을 잘못 읽게 된다.
내 한계도 적어 둔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다 접은 사람이라 잘 만든 각본에 후한 편일 수 있고, 수사나 법정 현장에 있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형사절차에 대한 이 영화의 묘사가 실무와 얼마나 맞는지는 단언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범인을 아는 것과 처벌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이 영화의 전언만큼은, 범죄물이 좀처럼 정직하게 다루지 않는 진실이라고 본다.
추격자, 지금 볼 가치가 있나
있다. 「추격자」는 한국 범죄 스릴러의 문법을 바꿔 놓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개봉 당시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가 크게 주목받았고, 이후 여러 범죄물이 이 영화의 톤과 구조를 참고했다는 점만으로도 한 번은 볼 이유가 된다.
다만 무엇을 보러 갈지는 정해 두는 편이 좋다. 이 영화는 사건의 쾌속 해결이나 통쾌한 응징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을 무력감 앞에 오래 세워 둔다.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 있고, 폭력의 수위와 실화를 바탕에 둔 소재의 무게도 가볍지 않다. 자극을 소비하려는 태도로 보기에 적합한 영화는 아니다.
반대로, 범죄물이 왜 존재하는가를 생각하며 보고 싶은 관객에게는 값이 있다. 이 영화는 범인의 얼굴을 일찍 보여주고도 긴장을 잃지 않으며, 그 긴장의 출처를 ‘누가’가 아니라 ‘제도가 왜 늦는가’로 옮겨 놓는다. 실제 사건을 다룬 보도나 판결문을 함께 읽으면, 영화가 압축한 것과 실제가 다른 지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거리를 재며 보는 것이 이 작품을 가장 깊게 보는 방법이다.
자주 묻는 질문
- Q. 영화 추격자는 실화인가? — 실화를 그대로 옮긴 재연물은 아니다. 2003~2004년의 유영철 연쇄살인에서 큰 틀의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물과 전개의 상당 부분은 허구다. 실제 사건과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 Q. 왜 범인을 잡고도 풀어주나? — 우리 형사절차는 자백만으로 사람을 가두지 않고 구속 사유와 물증이 소명돼야 한다. 영화는 초동 단계에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면 유력 피의자도 정해진 시한 뒤 풀려날 수 있다는 구조를, 하룻밤으로 압축해 극적으로 보여준다.
- Q. 추격자의 범인은 실제 유영철과 같나? — 같지 않다. 이름과 구체적 행적, 전개는 영화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실제 인물의 심리나 동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겹치는 것은 ‘평범한 외양의 가해자’라는 인상과 도시적 배경 정도다.
- Q. 이 영화를 볼 때 주의할 점은? — 폭력 묘사의 수위가 높고 실화를 바탕에 둔 소재여서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통쾌한 해결을 기대하기보다, 영화가 압축·과장한 지점과 실제 형사절차의 차이를 구분하며 보는 편이 오해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