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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 미스터리

주머니 속 ‘끝났다’는 쪽지, 1948년 소머튼 맨 미스터리

1948년 호주 소머튼 해변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의 시신. 옷의 라벨은 모두 뜯겨 있었고, 주머니엔 '타맘 슈드(끝났다)'라는 쪽지가 있었다. 70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는 죽음의 진실을 추적한다.

주머니 속 '끝났다'는 쪽지, 1948년 소머튼 맨 미스터리
주머니 속 '끝났다'는 쪽지, 1948년 소머튼 맨 미스터리

미스터리 개요

  • 1948년 호주 해변에서 발견된 라벨 없는 옷을 입은 신원 미상의 시신
  • 비밀 주머니에서 발견된 '타맘 슈드(끝났다)' 쪽지와 의문의 암호문
  • 스파이설부터 치정극까지 엇갈리는 가설, 70여 년 만에 밝혀진 이름

1948년 12월 1일 아침, 호주 애들레이드의 소머튼 해변. 방파제 벽에 기대어 잠든 듯 앉아 있는 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겉보기엔 그저 해변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평범한 중년 남성 같았다. 하지만 경찰이 시신을 수습하고 소지품을 확인하는 순간, 이 사건은 호주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 매혹적인 미스터리의 서막을 열게 된다. 남성의 옷에는 그 어떤 상표나 라벨도 남아있지 않았고, 지갑도, 신분증도 없었다. 그리고 가장 섬뜩한 대목은 그의 바지 속 숨겨진 비밀 주머니에서 나왔다. 돌돌 말린 작은 종이 조각, 거기엔 페르시아어로 단 두 단어가 적혀 있었다. ‘타맘 슈드(Tamam Shud)’. 번역하자면 ‘끝났다’ 혹은 ‘마무리되었다’는 뜻이다. 대체 그는 누구이며, 왜 자신의 신원을 철저히 지운 채 이 해변에서 생을 ‘끝내야’만 했을까. 우리는 지금부터 70년이 넘도록 수많은 추리광들을 잠 못 들게 한, 이른바 ‘소머튼 맨(Somerton Man)’ 사건의 단서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볼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의 전개는 시신 발견 전날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월 30일 저녁 7시경, 해변을 산책하던 목격자들은 방파제에 기대어 있는 한 남성을 보았다. 남성은 오른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가 힘없이 떨어뜨렸고, 목격자들은 그저 술에 취해 잠든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 남성은 전날 밤과 똑같은 자세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는 수사관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남성의 심장은 멎어 있었고, 위장에는 출혈이 가득했으며, 비장과 간은 비정상적으로 부어올라 있었다. 부검의는 강력한 독극물에 의한 사망을 의심했다. 그러나 체내에서 흔히 쓰이는 독극물 성분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누군가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사 속도가 매우 빠르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희귀 독극물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수사는 난항의 연속이었다. 남성의 지문은 호주 전역의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지 않았고, 치과 기록도 누구의 것과도 맞지 않았다. 입고 있던 양복, 셔츠, 넥타이의 라벨은 누군가 가위로 정교하게 오려낸 상태였다. 주머니에는 사용하지 않은 기차표 한 장과 버스표, 담배, 성냥, 빗이 전부였다. 경찰은 남성의 사진을 신문에 대대적으로 공개했지만, 그를 안다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던 이듬해 1월, 애들레이드 기차역 수하물 보관소에서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이 발견되었다. 가방 안의 옷가지들 역시 라벨이 모두 제거되어 있었으나, 실수인지 ‘T. Keane’이라는 이름이 적힌 옷이 몇 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실종자 중 ‘T. Keane’이라는 인물은 없었다. 이름마저도 추적을 피하기 위한 위장이었던 셈이다.

주머니 속 '끝났다'는 쪽지, 1948년 소머튼 맨 미스터리

풀리지 않는 단서들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남성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타맘 슈드’ 쪽지다. 이 쪽지는 12세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시집 《루바이야트(Rubaiyat)》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찢어낸 것이었다. 경찰은 이 희귀한 판본의 시집을 찾기 위해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였고, 놀랍게도 한 남성이 책을 들고 경찰서를 찾아왔다. 그는 시신 발견 전날 밤, 소머튼 해변 근처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 뒷좌석에 누군가 이 책을 던져놓고 갔다고 진술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찢겨 있었고, 그 조각은 시신의 주머니에서 나온 쪽지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책의 뒷표지에 희미하게 연필로 적힌 흔적들이었다. 하나는 알 수 없는 대문자 알파벳들로 이루어진 5줄의 암호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화번호였다. 전화번호의 주인은 소머튼 해변에서 불과 400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간호사 ‘제시카 톰슨’이었다. 경찰이 제시카를 찾아가 소머튼 맨의 흉상(데스마스크)을 보여주자, 그녀는 기겁하며 쓰러질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성을 전혀 모른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암호문은 해군 정보부와 암호 해독 전문가들에게 넘겨졌지만, 그 누구도 이 문자의 배열이 의미하는 바를 풀어내지 못했다. 무작위로 적힌 글자들인지, 아니면 일회성 난수표를 이용한 고도의 암호인지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주머니 속 '끝났다'는 쪽지, 1948년 소머튼 맨 미스터리

제기된 가설들

이 기이한 단서들은 수많은 가설을 낳았다. 가장 유력하게 제기된 첫 번째 가설은 ‘냉전 시대의 스파이설’이다. 사건이 발생한 1948년은 냉전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애들레이드 인근에는 우라늄 광산과 로켓 발사 시험장 등 호주의 주요 군사 기밀 시설이 밀집해 있었다. 남성의 건장한 체격, 라벨이 모두 제거된 옷, 추적할 수 없는 독극물의 사용, 그리고 해독 불가능한 암호문까지. 이 모든 정황이 그가 적국의 스파이였거나 이중 스파이였으며, 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 암살당했다는 추론을 뒷받침했다. 제시카 톰슨 역시 스파이 조직의 일원이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덧붙여졌다.

두 번째 가설은 ‘비극적인 치정극 혹은 자살설’이다. 이 가설은 제시카 톰슨과의 연결 고리에 주목한다. 제시카가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간호사로 일하며 어떤 남성에게 《루바이야트》를 선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머튼 맨이 그녀의 옛 연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었다. 남성이 그녀를 찾아왔으나 거절당하자, 해변에서 독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끝났다’는 뜻의 타맘 슈드 쪽지는 실연의 상처와 삶의 마무리를 의미하는 유서 같은 것이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왜 굳이 옷의 라벨을 모두 떼어내고 신원을 숨겼는지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에디터의 추적 노트

수십 년간 미제사건의 대명사로 군림하던 소머튼 맨 사건은, 2022년 호주의 데릭 애벗 교수 연구팀의 끈질긴 DNA 추적을 통해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시신의 머리카락에서 추출한 DNA를 계보학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한 결과, 소머튼 맨의 진짜 이름이 ‘칼 웹(Carl Webb)’이라는 1905년생 전기 기사로 밝혀진 것이다. 칼 웹은 시를 좋아하고 도박에 빠져 있었으며, 아내와 불화를 겪다 실종된 상태였다. 이로 인해 거창한 스파이설보다는, 아내를 찾아 애들레이드에 왔다가 절망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개인의 비극 쪽으로 사건의 무게추가 급격히 기울었다.

그러나 에디터의 시선에서 볼 때, 이름이 밝혀졌다고 해서 모든 미스터리가 풀린 것은 결코 아니다. 칼 웹이 왜 굳이 자신의 신원을 그토록 철저하게 지우려 했는가? 치과 기록조차 조작된 듯한 정황, 흔적 없는 독극물의 사용, 그리고 《루바이야트》 뒷면에 적힌 그 기괴한 암호문은 단순한 우울증 환자의 자살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치밀하고 작위적이다. 제시카 톰슨이 데스마스크를 보고 보였던 공포에 질린 반응 역시 단순히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본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우리는 칼 웹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그가 죽음 직전 소머튼 해변에서 맞닥뜨린 ‘진짜 현실’이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어쩌면 그는 평범한 전기 기사의 삶 이면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또 다른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세 줄 정리와 여운

1. 1948년 호주 소머튼 해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그의 주머니엔 ‘타맘 슈드(끝났다)’라는 쪽지가 있었다.
2. 라벨이 뜯긴 옷, 흔적 없는 독극물, 미해독 암호문 등은 그를 냉전 시대 스파이 미스터리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3. 70여 년 만에 DNA 분석으로 ‘칼 웹’이라는 이름이 밝혀졌으나, 그가 왜 모든 흔적을 지우고 죽음을 맞이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