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제 미스터리

공소시효를 없앴는데도, 끝나지 않는 미제살인 274건

미제살인 274건, 태완이법으로 공소시효는 사라졌지만 가장 유명한 미제들은 왜 여전히 남아 있나. 화성 사건 DNA 해결이 남긴 질문까지 정리한다.

공소시효를 없앴는데도, 끝나지 않는 미제살인 274건
공소시효를 없앴는데도, 끝나지 않는 미제살인 274건

작성 · 검수 이문PD · 최종 검토 2026년 8월 2일

미스터리 개요

  • 경찰이 미제로 분류한 국내 살인 사건은 2026년 초 기준 274건으로 집계됐다.
  • 2015년 태완이법으로 살인 공소시효는 폐지됐지만, 2000년 8월 이전 사건은 소급 대상이 아니다.
  • 화성 사건은 30여 년 만에 범인을 밝혀냈으나 시효 만료로 처벌하지 못했다 — '규명'과 '처벌'은 다른 문제다.

경찰이 ‘미제(未濟)’로 분류해 서류철에 남겨 둔 살인 사건은 2026년 초를 기준으로 274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화성 사건 용의자가 특정되던 무렵 268건으로 알려졌던 숫자가, 몇 해 사이 오히려 늘었다. 통계의 이면은 단순하다.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 죽음에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은 아직 없다는 뜻이 274번 쌓여 있는 것이다.

흔히 미제 사건은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숫자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274건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기 이전에 수사 제도와 시간, 그리고 ‘해결’이라는 말의 정의가 맞물린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274라는 숫자가 실제로 말하는 것

미제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수사가 장기화된 사건을 가리킨다. 경찰의 수사는 대체로 단계로 나뉘어 굴러간다. 사건 발생 직후 약 1년간은 광역수사대와 과학수사 인력이 집중 투입되고, 1~5년 구간에는 관할 경찰서 전담반이, 5년을 넘기면 지방경찰청의 장기 미제 전담수사팀이 사건을 넘겨받아 계속 붙잡는다.

문제는 이 마지막 단계가 가장 얇다는 데 있다. 수천 건 규모의 미제를 다루는 서울의 전담 인력이 2015년 기준 11명 수준이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후 경찰청이 전국 전담팀 인력을 보강했지만, DNA 등 감정 의뢰 건수가 해마다 급증하는 속도를 조직이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274라는 숫자에는 ‘아직 못 풀었다’는 사실과 함께 ‘끝까지 붙들 손이 늘 부족했다’는 현실이 함께 적혀 있는 셈이다.

공소시효를 없앴는데도, 끝나지 않는 미제살인 274건

태완이법이 연 문, 그리고 이미 닫혀 있던 문

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공소시효다. 그리고 그 지형을 바꾼 것이 이른바 ‘태완이법’이다. 1999년 대구의 한 골목에서 여섯 살 김태완 군이 괴한이 끼얹은 황산에 화상을 입고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됐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유족과 시민단체는 살인죄의 공소시효 자체를 없애 달라고 오랜 시간 호소했다.

그 결과 2015년 7월 31일, 개정 형사소송법(제253조의2 신설)이 시행됐다. 사람을 살해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으로, 국회 표결에서 반대 없이 찬성 199표로 통과됐다. 원칙적으로 이제 살인범은 ‘시간이 지나면 처벌을 면한다’는 기대를 가질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 법에는 조용한 경계선이 하나 있다. 소급 적용은 법 시행 시점에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던 사건, 즉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살인으로 한정됐다는 점이다. 이 한 줄 때문에, 정작 국민 다수가 ‘미제’ 하면 떠올리는 사건 상당수는 태완이법의 우산 밖에 놓였다. 법이 제도의 공백을 뒤늦게 메우려 할 때 어디까지 소급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신당역 사건이 드러낸 ‘법이 늦게 도착하는 시간’과도 닿아 있다.

사건 발생 현재 상태
이형호 유괴살인 1991년 1월 범인 미검거, 2006년 공소시효 만료
개구리소년(대구 성서) 1991년 3월 실종 / 2002년 유해 발견 범인 미검거, 2006년 공소시효 만료
화성 연쇄살인 1986~1991년 2019년 이춘재 지목, 시효 만료로 처벌 불가

세 사건은 오래도록 ‘대한민국 3대 미제’로 함께 묶여 왔다. 공통점은 모두 태완이법 이전에 시효가 만료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설령 지금 범인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형사처벌의 문은 이미 닫혀 있다.

공소시효를 없앴는데도, 끝나지 않는 미제살인 274건

화성이 증명한 것 — 시간을 이긴 DNA, 이기지 못한 시효

그 닫힌 문의 의미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 사건이 화성이다. 30여 년 가까이 미궁이던 이 사건은 2019년 8월 9일, 과거 증거물에 남아 있던 유전자를 재감정하는 과정에서 수형 중이던 이춘재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오며 방향을 틀었다. 같은 해 9월 조사에서 그는 범행을 인정했고, 경찰은 다수의 살인과 성범죄에 대한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대목은 미제 수사의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압축한다. 사건 당시엔 판독조차 어렵던 시료가 수십 년 뒤의 기술 앞에서 결정적 단서가 됐다. ‘증거만 잘 보존돼 있으면 시간은 언젠가 우리 편’이라는 명제가 실제로 성립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그는 이 사건으로 새로 처벌받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이미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

주의

공소시효 폐지(태완이법)는 2015년 7월 31일 시점에 시효가 남아 있던 살인, 즉 대체로 2000년 8월 1일 이후 사건에만 소급된다. 그 이전에 시효가 완성된 사건은 범인을 특정해도 ‘처벌’은 불가능하다.

왜 274건은 좀처럼 줄지 않는가

미제가 미제로 남는 이유는 드라마처럼 단일하지 않다. 초동 수사 단계에서 현장 증거가 충분히 확보·보존되지 못하면, 훗날 기술이 발전해도 되살릴 원본 자체가 없다. 화성이 예외적으로 풀린 것은 결정적 시료가 살아남아 있었던 덕이 크다. 반대로 많은 장기 미제는 ‘재감정할 물증이 남지 않은’ 벽에 부딪힌다.

여기에 인력과 장비의 문제가 겹친다. 지방청 전담팀은 수백 건을 소수가 나눠 맡고, DNA·지문 감정을 담당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규모도 매년 폭증하는 의뢰량에 비하면 넉넉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오래된 사건일수록 관련자의 기억은 흐려지고, 목격자와 참고인은 세상을 떠난다. 시간은 증거에는 가끔 유리하게, 사람의 진술에는 대체로 불리하게 작동한다.

꿀팁

전담팀은 미제 사건의 증거물에 대해 DNA와 지문 등을 ‘한 번 감정하고 끝’내지 않고 주기적으로 재감정한다. 기술이 갱신될 때마다 옛 증거를 다시 돌려보는 것이 장기 미제 수사의 핵심 전술이다.

‘해결’이라는 말을 다시 정의하기

그렇다면 미제 사건에서 ‘해결’이란 무엇인가. 화성은 우리에게 불편한 답을 남겼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졌지만 법정에서 죄를 물을 수는 없었다. 처벌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그 사건은 여전히 ‘끝’나지 못했다. 그러나 유족과 사회가 진실의 윤곽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무언가가 매듭지어졌다.

274건이라는 숫자는 그래서 두 방향의 과제를 동시에 가리킨다. 하나는 처벌 가능한 사건을 끝까지 추적해 시효 없는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처벌이 불가능해진 사건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규명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유족에게는 후자 역시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답을 모르는 상실은 끝나지 않는 상실이기 때문이다.

미제 사건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그것은 자극적인 미스터리가 아니라 한 사회가 죽음을 얼마나 끝까지 책임지려 하는가에 대한 시험지처럼 읽힌다. 274라는 숫자가 조금씩이라도 줄어드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비로소 ‘해결’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정직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소시효가 폐지됐는데 왜 옛날 미제는 범인을 잡아도 처벌을 못 하나요?
태완이법의 공소시효 폐지는 2015년 7월 31일 시점에 아직 시효가 남아 있던 살인(대체로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에만 소급 적용됩니다. 그 전에 이미 시효가 끝난 사건은 처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Q. 국내 미제 살인 사건은 몇 건이나 되나요?
경찰 집계상 미제로 분류된 살인 사건은 2019년 무렵 268건, 2026년 초 기준 274건으로 알려졌습니다. 집계 기준과 시점에 따라 숫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DNA 기술이 발전했으니 이제 미제는 다 풀 수 있는 것 아닌가요?
DNA는 강력한 도구지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사건 당시의 증거물이 온전히 보존돼 있어야 재감정이 가능합니다. 물증이 남지 않은 사건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되살릴 원본이 없어 한계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