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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 미스터리

DNA가 지운 ‘완전범죄’, 잡고도 벌하지 못한 이름들

DNA 과학수사와 '태완이법' 공소시효 폐지가 미제사건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지, 잡고도 벌하지 못한 사건들이 남긴 질문을 짚었다.

DNA가 지운 '완전범죄', 잡고도 벌하지 못한 이름들
DNA가 지운 '완전범죄', 잡고도 벌하지 못한 이름들

작성 · 검수 이문PD · 최종 검토 2026년 7월 31일

미스터리 개요

  • DNA 데이터베이스가 정착되며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는 미제의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앤 '태완이법'은 미래의 사건에는 열렸지만, 이미 시효가 끝난 과거에는 닫혀 있다.
  • 화성 연쇄살인처럼 범인을 특정하고도 처벌하지 못하는 역설이 그 경계선을 상징한다.

오래된 미제사건에는 공통된 서사가 있었다. 결정적 목격자는 없고, 흉기는 사라지고, 세월이 흐르면 수사기록은 캐비닛 안에서 먼지를 뒤집어쓴다. ‘시간이 곧 범인의 편’이라는 오랜 통념. 그러나 지난 10여 년 사이 이 공식은 조용히, 그러나 근본에서부터 흔들렸다. 사람의 기억이 흐려지는 동안, 범죄 현장에 남은 세포 하나는 흐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THE KILLING TIMES가 주목한 것은 특정 사건 하나가 아니라, 미제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쓰고 있는 두 개의 축이다. 하나는 DNA 데이터베이스라는 기술, 다른 하나는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앤 법. 이 둘이 맞물리면서 ‘완전범죄’라는 말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다만 그 변화의 경계선 위에는, 범인을 알고도 손대지 못하는 이름들이 여전히 서 있다.

세포 하나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전환점은 2010년 시행된 이른바 DNA법(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었다. 살인·성폭력 등 주요 범죄로 수형 중이거나 구속된 피의자의 DNA를 채취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도록 한 제도다. 취지는 단순하다. 지금 붙잡은 범죄자의 유전정보를, 아직 미해결로 남은 과거 사건 현장의 증거와 대조하는 것.

효과는 통계로 드러났다.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 DNA는 47만 건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고, 이 정보를 토대로 재수사가 재개된 사건만 수천 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감옥에 있는 수형자의 DNA가 몇 년 전, 때로는 십수 년 전 사건 현장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순간, 잊혔던 사건 파일이 다시 책상 위로 올라온다.

흥미로운 것은 DNA가 해결한 미제의 유형별 지형이다. 언론에 보도된 집계를 보면, 극악한 강력범죄보다 오히려 재범이 잦은 생활밀착형 범죄에서 대조 성공이 두드러진다.

범죄 유형 DNA로 해결된 미제(건)
절도 4,084
성폭력 1,015
강도 264
마약 165
폭력 137
방화 43
살인 38

※ 언론에 보도된 누적 집계 기준으로, 발표 시점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다.

절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명료하다. DNA 데이터베이스의 힘은 결국 ‘같은 사람이 반복해서 흔적을 남길 때’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한 번의 검거가 과거의 여러 사건을 한꺼번에 풀어내는 구조. 완전범죄를 무너뜨린 건 극적인 반전이 아니라, 이 지루하고 성실한 대조 작업의 축적이었다.

DNA가 지운 '완전범죄', 잡고도 벌하지 못한 이름들

‘태완이법’이 연 문, 그리고 닫아 둔 문

기술이 시효를 무의미하게 만들자, 법도 뒤따라 움직였다. 2015년 국회는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사람을 살해한 죄의 공소시효를 아예 폐지했다. 이른바 ‘태완이법’이다. 법의 이름은 1999년 대구에서 황산 테러를 당해 세상을 떠난 어린이 이태완 군에게서 따왔다. 아이를 잃고도 범인을 끝내 법정에 세우지 못한 유족의 오랜 싸움이, 제도의 한 줄을 바꿔놓은 것이다.

DNA 과학수사가 발전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검거 가능성이 줄지 않는다’는 현실이, 시효라는 제도의 존재 이유 자체를 흔들었다. 증거가 사라지지 않는데 굳이 면죄부를 줄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문은 한쪽으로만 열렸다. 태완이법은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과거 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법 시행 시점에 시효가 살아 있던 사건만 ‘영구히’ 추적할 수 있게 됐을 뿐, 그 이전에 시효가 끝나버린 사건들은 여전히 법의 바깥에 남았다. 미래를 향해서는 활짝 열린 문이, 과거를 향해서는 닫혀 있는 셈이다.

꿀팁

공소시효 폐지는 ‘앞으로’의 사건을 겨냥한다. 이미 시효가 끝난 사건은 범인을 특정해도 형사처벌의 문이 다시 열리지 않는다 — 이 시차가 오늘날 미제의 가장 아픈 지점이다.

DNA가 지운 '완전범죄', 잡고도 벌하지 못한 이름들

화성, 잡았으나 벌하지 못한 이름

이 역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화성 연쇄살인이다.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경기 화성 일대에서 다수의 여성이 희생된, 한국 범죄사에서 가장 오래 미궁에 빠져 있던 사건. 수십 년간 이름 없던 ‘그 사람’은 2019년, 과거 증거물에서 검출한 DNA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면서 마침내 특정됐다. 그해 9월 그는 범행을 자백했다.

기술의 승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말은 정의의 완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건 대부분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뒤였고, 태완이법의 소급 적용도 불가능했다. 이춘재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별개의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일 뿐, 화성 연쇄살인 그 자체로 처벌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름은 밝혀졌지만, 그 이름에 대한 법적 심판은 끝내 유예됐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누구였는가’를 확인해 준 것과, 국가가 그 죄를 단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화성은 과학이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음을, 그러나 진실이 곧 처벌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동시에 증명했다.

기술이 앞서갈 때, 남는 질문들

DNA 수사가 강력해질수록, 그 이면의 물음도 함께 커진다. 47만 건이 넘는 유전정보가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다는 것은, 개인의 가장 내밀한 신체 정보가 시스템에 보관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범죄까지 채취 대상으로 할지, 무죄가 확정되거나 재심으로 뒤집혔을 때 그 정보를 어떻게 폐기할지 — 수사 효율과 프라이버시 사이의 균형은 여전히 논쟁 중인 영역이다.

DNA는 강력한 증거이되, 그 자체로 유죄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염·혼합·이차 전이 가능성 등 감정 결과를 둘러싼 해석의 여지는 남아 있고, 과학적 증거일수록 법정에서의 신중한 검증이 요구된다. ‘완전범죄는 없다’는 명제가 ‘기계가 범인을 지목한다’는 맹신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 — 그것이 기술 시대 수사가 짊어진 또 하나의 책임이다.

주의

DNA 일치는 ‘동일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과학적 판단이지, 그 자체로 범행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증거의 채취·보관 과정과 정황이 함께 검증돼야 한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시간이 범인의 편이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캐비닛 속 오래된 파일은 더 이상 ‘종결’을 뜻하지 않는다. 어딘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두 개의 유전자가 조용히 포개지는 순간, 잊혔던 이름은 다시 호명된다. 다만 그 호명이 언제나 심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 화성이 남긴 이 미완의 문장이, 지금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태완이법이 생겼는데 왜 화성 연쇄살인 범인은 처벌받지 못하나요?
태완이법은 2015년 시행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습니다. 화성 연쇄살인은 대부분 그 이전에 시효가 완성돼, 범인을 특정하고도 해당 사건으로는 형사처벌이 불가능했습니다.

Q.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은 재수사해도 의미가 없나요?
형사처벌은 어렵지만, 범인을 특정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유족에게 사실을 확인해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여죄 중 시효가 남은 사건이 있다면 처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Q. 내 DNA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나요?
DNA법상 채취 대상은 살인·성폭력 등 법에 정해진 주요 범죄의 수형자·구속피의자 등으로 한정됩니다. 일반 시민의 유전정보가 임의로 등록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