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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 미스터리

모든 상표가 뜯겨나간 시신, 1970년 이스달렌 계곡의 여인

1970년 노르웨이 이스달렌 계곡에서 불탄 채 발견된 신원 미상의 여성. 옷의 상표는 모두 뜯겨 있었고, 짐에서는 암호 노트와 가발이 나왔다. 반세기가 넘도록 풀리지 않은 냉전 시대 최악의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모든 상표가 뜯겨나간 시신, 1970년 이스달렌 계곡의 여인
모든 상표가 뜯겨나간 시신, 1970년 이스달렌 계곡의 여인

미스터리 개요

  • 1970년 노르웨이 죽음의 계곡에서 옷의 상표가 모두 제거된 채 불탄 여성의 시신이 발견됨
  • 수하물에서 8개의 가명, 가발, 암호 노트가 발견되며 국제 스파이 의혹 증폭
  • 2017년 첨단 동위원소 분석으로 출신 지역이 좁혀졌으나, 여전히 진짜 이름과 배후는 미궁 속

1970년 11월 29일, 노르웨이 베르겐 외곽의 이스달렌(Isdalen) 계곡. 현지인들 사이에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던 후미진 곳을 하이킹하던 한 가족은 공터에서 끔찍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반쯤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여성의 시신이었다. 시신 주변에는 수면제 통, 빈 술병, 타다 남은 여권, 그리고 은수저가 흩어져 있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지만, 사건은 곧 기이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장 섬뜩한 대목은 시신의 옷차림이었다. 여성이 입고 있던 옷, 심지어 속옷과 신발에서조차 제조사를 알 수 있는 모든 ‘상표’가 예리한 칼로 도려내져 있었다. 지문은 불에 타 훼손되었고,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는 현장에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이며, 왜 이 차가운 계곡에서 불길에 휩싸인 채 죽어야만 했을까? THE KILLING TIMES 미스터리팀과 함께 반세기가 넘도록 풀리지 않은 ‘이스달의 여인(Isdal Woman)’ 사건의 단서들을 따라가 보자.

무슨 일이 있었나

경찰은 베르겐 기차역 보관소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가방 두 개를 발견했다. 가방 안의 지문은 이스달렌 계곡에서 발견된 시신의 것과 일치했다. 수사관들은 가방을 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안에는 화장품과 옷가지 외에도 도수 없는 안경 여러 개, 다양한 색상의 가발, 노르웨이와 독일 등 다국적 지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호 노트’가 들어있었다. 물론 가방 안의 옷들도 현장의 시신처럼 모든 상표가 철저히 뜯겨나간 상태였다.

경찰은 그녀가 묵었던 호텔들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그녀는 노르웨이 전역을 돌며 최소 8개의 가명(제네비에브 랑시어, 클라우디아 티엘트 등)과 위조 여권을 사용해 여러 호텔을 옮겨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호텔에 머물 때마다 방을 바꾸기를 요구했고, 항상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녀는 영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를 구사했지만, 묘한 억양을 섞어 자신의 진짜 국적을 숨기려 했다. 사망 며칠 전, 그녀는 가구점에서 거울을 보며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모든 상표가 뜯겨나간 시신, 1970년 이스달렌 계곡의 여인

풀리지 않는 단서들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부검 결과, 그녀의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과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밝혀졌다. 위장에서는 50~70알에 달하는 수면제가 발견되었고, 폐에서는 연기를 들이마신 흔적(그을음)이 확인됐다. 즉, 수면제를 다량으로 삼킨 뒤 불길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뜻이다. 노르웨이 경찰은 이를 ‘자살’로 결론지으려 했으나, 대중과 언론은 납득하지 못했다. 스스로 수면제를 그토록 많이 먹고,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뒤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자살 방식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기이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미스터리의 핵심은 가방에서 나온 ‘암호 노트’다. 군사 정보국까지 동원된 끝에 해독된 노트의 내용은, 그녀가 유럽 전역을 이동한 날짜와 장소를 기록한 일종의 로그북이었다. ‘N 9 N 18 S 30 M’ 같은 암호는 ’11월 9일부터 18일까지 스타방에르, 이후 베르겐’이라는 식의 동선을 의미했다. 평범한 여행객이 자신의 동선을 암호화하고, 모든 소지품의 상표를 제거하며, 8개의 위조 여권과 가발을 들고 다닐 이유는 없다. 그녀는 철저히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 했던 누군가, 혹은 쫓기는 누군가였다.

모든 상표가 뜯겨나간 시신, 1970년 이스달렌 계곡의 여인

제기된 가설들

첫째, 가장 유력한 ‘냉전 시대의 스파이’ 가설이다. 1970년 당시 노르웨이는 NATO의 핵심 전략 요충지였고, 베르겐 인근에서는 극비리에 해군 미사일(펭귄 미사일)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가 이동한 동선 중 상당수가 노르웨이 군사 기지나 실험 장소와 겹친다는 점이 이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소련의 KGB, 이스라엘의 모사드, 혹은 서방 정보기관의 요원이었으나 정체가 발각되어 암살당했다는 추측이다. 상표를 제거하는 것은 스파이들이 출처를 숨기기 위해 흔히 쓰는 수법이기도 하다.

둘째, ‘국제 수표 사기단’ 혹은 ‘밀수 조직’ 연루설이다. 스파이 치고는 그녀의 행동이 때때로 너무 눈에 띄었고, 암호 노트의 수준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요원의 것이라기엔 다소 단순하다는 지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가설은 왜 조직이 그녀를 이토록 기괴한 방식(수면제와 분신)으로 살해해야 했는지, 그리고 왜 국가 정보기관들이 이 사건에 대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침묵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셋째, ‘망상 장애로 인한 자살’ 가설이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극도의 피해망상에 시달린 나머지, 스스로 신원을 숨기기 위해 상표를 자르고 가명을 쓰다 결국 인적 없는 계곡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초동 수사 당시 경찰이 밀어붙였던 주장이지만, 위조 여권을 여러 개 만들어낼 수 있는 자금력과 정보력, 그리고 타살을 위장한 듯한 기이한 현장 상황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가장 떨어진다.

에디터의 추적 노트

사건 발생 후 반세기가 지난 2017년, 노르웨이 방송국 NRK와 BBC의 공조로 이스달 여인의 보관된 턱뼈에서 DNA와 동위원소를 분석하는 현대 과학 수사가 진행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녀의 치아 법랑질에 남은 화학적 흔적은 그녀가 독일 뉘른베르크 근처나 프랑스-독일 접경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가리켰다. 필적 감정에서도 프랑스어권에서 교육받은 특징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 과학적 쾌거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진짜 이름은 여전히 인터폴의 미제 명단에 남아있다.

에디터의 관점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나 자살로 보기 어렵다. 그녀는 분명 ‘보이지 않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국가 단위의 정보전이 아니고서야 개인이 8개의 완벽한 위조 신분을 유지하며 군사 요충지만을 맴돌 이유는 없다. 가장 뼈아픈 진실은, 그녀가 속했던 조직조차 그녀를 철저히 버렸거나 흔적을 지우는 데 동조했다는 점이다. 차가운 이스달렌 계곡에서 불타오르며 그녀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것은, 자신을 쫓아온 적의 얼굴이었을까, 아니면 철저한 고립과 배신이었을까.

[세 줄 정리와 여운]
1. 1970년 노르웨이 이스달렌 계곡에서 모든 상표가 제거된 옷을 입고 불탄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2. 수하물에서는 8개의 가명 여권, 가발, 그리고 동선을 숨긴 암호 노트가 쏟아져 나왔다.
3. 첨단 DNA 분석으로 그녀의 고향은 좁혀졌으나, 냉전의 그림자 속에 묻힌 진짜 이름은 영원히 재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