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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심층

13년 12억 후원금, 어금니아빠 이영학은 왜 사형을 면했나

어금니아빠 이영학 사건을 후원금 12억의 사용 내역, 딸을 유인에 동원한 지배 구조, 1심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양형 논리로 짚는다.

13년 12억 후원금, 어금니아빠 이영학은 왜 사형을 면했나
13년 12억 후원금, 어금니아빠 이영학은 왜 사형을 면했나

작성 · 검수 서동혁 · 최종 검토 2026년 8월 25일

사건 요약

  • 이영학은 딸과 같은 희귀병을 내세워 13년간 12억 원이 넘는 후원을 받았지만, 딸 치료비에 쓴 돈은 그중 1%에도 못 미쳤다
  • 2017년 그는 딸을 시켜 딸의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였고, 1심은 사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이 확정한 형은 무기징역이었다
  • 동정의 구조를 이용한 후원 사기, 미성년 자녀를 범행에 끌어들인 지배 관계, 사형이 감형된 양형 논리를 짚는다

2017년 가을, 한 여중생이 친구의 집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딸과 같은 희귀병을 앓아 ‘어금니아빠’로 불리며 13년간 12억 원이 넘는 후원을 받아 온 사람이었다. 1심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이 최종 확정한 형은 무기징역이었다.

이 사건은 한 사람의 범행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오랜 시간 쌓인 동정이 어떻게 악용됐는지, 미성년 자녀가 어떻게 범행의 도구가 됐는지, 그리고 사형과 무기징역을 가른 법의 논리는 무엇이었는지가 함께 얽혀 있다. 확인된 판결과 보도를 근거로 그 얼개를 짚는다.

어금니아빠 이영학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나

이영학은 2017년 9월 딸을 시켜 딸의 친구인 여중생을 집으로 불러들인 뒤 살해했고, 이틀여 뒤 스스로 경찰에 자신의 범행을 알렸다. 이것이 사건의 뼈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딸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피해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며 집으로 오게 했고, 수면제 성분이 든 음료를 건넸다. 이후 이영학은 피해 학생을 추행한 뒤 이튿날 살해하고 시신을 강원 영월 일대에 유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영학은 아홉 살 무렵부터 치아와 턱뼈 부위에 종양이 자라는 거대백악종이라는 희귀 난치병을 앓았고, 그의 딸도 같은 병을 앓았다. 부녀가 나란히 얼굴이 변형된 채 방송과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어금니아빠’라는 별명과 함께 오랜 기간 후원이 모였다. 사건이 드러나기 불과 몇 달 전인 2017년, 그의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영학은 2016년 무렵 아내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폭행한 혐의로도 재판을 받았다.

수사가 시작되자 동정의 대상이던 인물의 다른 얼굴이 함께 드러났다. 오랜 병력과 가난을 호소하며 받아 온 후원금의 흐름, 아내를 상대로 한 범죄, 그리고 자신의 딸을 유인에 동원한 정황이 한꺼번에 나온 것이다. 이 사건이 단순한 강력범죄를 넘어 오래 회자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3년 12억 후원금, 어금니아빠 이영학은 왜 사형을 면했나

후원금 12억은 어디로 갔나

13년간 개인 계좌로 들어온 후원금은 12억8000만 원이 넘지만, 정작 딸의 치료에 쓴 돈은 그중 1%에도 못 미쳤다. 보도로 정리된 수치가 그렇다. 이영학이 딸의 치료비로 실제 부담한 금액은 700만 원가량으로 알려졌고, 나머지 대부분은 생활비와 사치성 지출로 흘러갔다는 것이 수사와 재판에서 다뤄진 내용이다.

주목할 것은 이 후원이 하루아침의 사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2004년 무렵부터 십수 년에 걸쳐 조금씩 쌓인 신뢰의 결과다. 아픈 아이를 둔 아버지라는 서사는 검증을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 후원자는 계좌에 돈을 넣을 뿐, 그 돈이 실제 병원비로 쓰였는지 확인할 수단이 없다. 개인 계좌로 오가는 소액 후원에는 회계 보고 의무도, 감독 기관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동정심이 클수록 의심은 뒤로 밀린다.

이 지점이 이 사건에서 가장 사회적인 대목이다. 병과 가난을 앞세운 호소는 우리 사회가 가장 관대하게 지갑을 여는 서사이고, 동시에 가장 검증이 느슨한 통로다. 나는 학부 시절 미국 지역 검찰청에서 사건 기록을 정리하며 자선을 가장한 모금 사기가 별도의 유형으로 분류돼 다뤄지는 것을 봤다. 피해가 소액으로 넓게 흩어져 개개인은 신고할 동기가 약하고, 그래서 오래 지속된다는 점에서 이영학의 후원 구조와 겹쳐 읽힌다.

13년 12억 후원금, 어금니아빠 이영학은 왜 사형을 면했나

왜 자신의 딸을 범행에 끌어들였나

이영학이 딸을 유인의 도구로 쓴 것은 피해 학생의 경계를 허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또래 친구였기 때문으로 볼 여지가 크다. 낯선 어른의 부름에는 응하지 않아도, 같은 반 친구가 영화를 보러 가자며 집으로 부르면 의심은 사라진다. 범행의 성패를 가르는 첫 관문을 딸을 통해 넘은 셈이다.

더 무거운 것은 부녀 사이의 힘의 기울기다. 딸은 아버지와 같은 병을 앓으며 오랜 시간 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 온 미성년자였다. 법원이 딸에게도 유죄를 인정하면서 장기 6년·단기 4년의 부정기형을 확정한 것은 그 행위의 무게 때문이지만, 동시에 재판 과정에서는 아버지의 지시를 거스르기 어려운 지배·복종 관계가 함께 다뤄졌다. 계획을 세운 쪽과 그 계획에 동원된 쪽은 같은 자리에 놓일 수 없다.

여기서 특정한 진단명을 붙이는 것은 성급하다. 다만 행동의 패턴은 읽을 수 있다. 오랜 기간 타인의 동정을 관리하고, 아내와 딸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용한 방식은 관계를 도구로 다루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다. 충동적 폭발이 아니라, 유인에서 살해까지 단계를 밟은 계획성이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다.

1심 사형이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바뀐 이유

2심이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핵심 논리는 ‘교화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고법은 이영학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사형에 처할 정도로 교화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 이 판단을 유지해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심급 선고 요지
1심(서울북부지법) 사형 범행의 잔혹성과 계획성 중시
2심(서울고법) 무기징역 영구 격리는 필요하나 교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음
대법원 무기징역 확정 형이 너무 무겁거나 가볍다고 볼 수 없음

한국에서 사형은 법에 남아 있으나 1997년 이후 집행되지 않아, 실무상 무기징역과 사형의 거리는 ‘실제 집행’이 아니라 ‘선고 그 자체의 상징성’에서 갈린다. 대법원 판례는 사형을 ‘문명국가의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해 왔다. 재판부가 계획성과 결과의 중대함을 인정하고도 사형까지 가지 않은 데에는 이 엄격한 기준이 작동한다.

판결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면, 재판부는 피고인을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취급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역설적인 표현이다. 극형을 면한 근거가 피고인의 인격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유족의 정서와 법리 사이의 거리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지점이 바로 이 양형 대목이다.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지점은 없었나

가장 먼저 비어 있던 곳은 아내를 향한 폭력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다. 이영학은 사건 이전에 이미 아내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폭행한 혐의를 받았고, 그 가정 안의 폭력은 사건 몇 달 전 아내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가정 내부의 지배와 폭력이 일찍 분리·개입됐다면, 그 집이 미성년자를 유인하는 무대가 되기 전에 신호를 잡을 여지가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두 번째는 후원의 검증 공백이다. 아픈 아이를 이유로 십수 년간 억 단위의 돈이 개인 계좌로 모이는 동안, 그 돈이 실제 치료에 쓰였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어디에도 없었다. 방송 노출과 온라인 모금은 동정을 빠르게 증폭시키지만, 그 뒤의 사용처를 추적하는 장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는 개인의 악의만이 아니라 제도의 사각이 함께 만든 결과다.

꿀팁

모금 사기의 신호는 ‘검증 거부’에서 자주 드러난다. 치료·수술 내역이나 병원 영수증 공개를 반복적으로 회피하고, 후원이 개인 계좌로만 오가며, 사연이 감정에 크게 기댈수록 확인 장치를 요구하는 것이 안전하다.

세 번째는 딸이라는 존재다. 아버지와 같은 병을 앓으며 학교와 사회의 시야에 있었던 미성년자가, 정작 가장 위험한 어른과 단둘이 방치돼 있었다. 아동이 보호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에서, 그 보호자가 위험원일 때 이를 걸러낼 이중의 안전망이 얼마나 얇았는지를 이 사건은 드러낸다.

내가 보는 이 사건

여기서부터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내 판단이다. 나는 이 사건의 본질이 ‘병든 아버지의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동정을 자원으로 다루는 법을 익힌 사람의 계획적 범행’에 가깝다고 본다. 근거는 앞에서 정리한 사실들이다. 13년에 걸친 후원 관리, 아내를 상대로 한 통제, 딸을 유인에 배치한 방식은 모두 가까운 사람과 낯선 다수의 감정을 자신의 필요에 맞춰 배열해 온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다.

반대로 ‘심신의 문제로 인한 우발적 범행’이라는 해석은 낮게 본다. 유인 전화, 음료, 시간 간격을 둔 실행 등 단계마다 판단과 선택이 개입한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다만 2심이 사형을 감형한 논리 자체는 자의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형을 예외 중의 예외로 묶어 온 판례의 일관성 안에서 나온 결론이고, 그 일관성이 무너지면 다른 사건에서 자의가 생긴다.

물론 나는 수사기관에 몸담은 적이 없고, 이영학의 내면을 직접 조사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읽은 것은 판결문과 보도이지 그의 심리 감정 원본이 아니다. 그래서 진단명을 붙이지 않는다. 다만 기록에 남은 행동의 순서만으로도, 이 사건을 ‘불운한 환자의 일탈’로 정리하는 것은 사실과 어긋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실용적인 교훈은 ‘동정과 검증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픈 아이의 서사는 진짜일 때가 훨씬 많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악용이 오래 숨는다. 개인 계좌로 오가는 장기 후원일수록 사용처를 확인할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이영학 이후에도 반복되는 모금 사기들이 다시 확인시켜 준다.

또 하나는 가정 내 폭력을 조기에 분리하는 문제다. 아내를 향한 폭력이 방치된 집에서 아동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점은, 가정폭력 신고가 왜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더 큰 범죄의 예고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집 안에서 벌어지는 통제와 폭력은 그 집 밖의 누군가에게로 번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양형을 둘러싼 감정과 법리의 간극을 어떻게 다룰지가 남는다.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의 선택은 유족에게는 정의의 문제이고, 법원에는 판례의 일관성 문제다.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무기징역이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투명하게 하는 제도의 몫이다.

자주 묻는 질문

  • Q. 이영학은 결국 어떤 형을 확정받았나? —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2018년 11월 대법원이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사형은 아니다.
  • Q. 후원금은 실제로 얼마였고 어디에 쓰였나? — 보도에 따르면 13년간 개인 계좌로 들어온 후원금은 12억8000만 원이 넘지만, 딸의 치료에 실제로 쓴 금액은 그중 1%에도 못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다른 용도로 소비됐다.
  • Q. 딸은 어떤 처벌을 받았나? — 딸은 아버지의 지시로 피해 학생을 유인한 행위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장기 6년·단기 4년의 부정기형이 확정됐다. 재판에서는 부녀 사이의 지배·복종 관계도 함께 다뤄졌다.
  • Q. 1심 사형이 왜 무기징역으로 바뀌었나? — 2심은 영구 격리의 필요는 인정하면서도 교화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보아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고, 대법원이 이를 유지했다. 사형을 극히 예외적 경우로 한정해 온 판례 기준이 작동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