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스테이트 킬러, 40년 미제를 깬 건 먼 친척의 DNA였다
골든스테이트 킬러 조셉 디앤젤로는 유전자 계보 수사로 40년 만에 특정됐다. 방법의 한계, 공소시효와 유전정보 제도의 공백, 한국 미제 수사와의 거리를 짚는다.
작성 · 검수 서동혁 · 최종 검토 2026년 9월 9일
사건 요약
- 1970~80년대 캘리포니아를 공포에 빠뜨린 골든스테이트 킬러는 2018년, 범인이 아니라 그의 먼 친척이 유전자 사이트에 남긴 DNA를 통해 특정됐다.
- 유전자 계보 수사는 용의자를 좁히는 '단서'였을 뿐, 유죄의 증거는 쓰레기통에서 확보한 직접 DNA였다. 방법의 한계와 오인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 한국은 2015년 살인 공소시효를 없앴지만, 이 방식이 그대로 쓰일 제도적·기술적 토대는 아직 비어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카운티에서 연쇄 주거침입과 성폭행, 살인이 이어졌다. 사건들은 오랫동안 다른 이름으로 따로 수사됐고, 하나로 묶인 뒤에도 범인은 40년 가까이 특정되지 않았다. 2018년 4월, 캘리포니아 수사당국은 당시 일흔둘의 전직 경찰관 조셉 제임스 디앤젤로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이 남긴 것은 범행의 규모만이 아니다. 수십 년 묵은 미제를 연 열쇠가 범인 본인의 자료가 아니라, 그와 유전자를 일부 공유한 먼 친척이 민간 사이트에 올려둔 DNA였다는 점이다. 이 글은 그 방법이 무엇을 증명했고 무엇을 증명하지 못했는지, 제도가 어디서 비어 있었는지를 본다.
골든스테이트 킬러 조셉 디앤젤로는 어떻게 40년 만에 붙잡혔나
결론부터 적으면, 범인의 DNA를 데이터베이스에서 곧바로 찾은 것이 아니라 그의 친척들을 먼저 찾아 좁혀 들어간 것이다. 미국 언론 보도와 검찰 발표를 종합하면,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DNA는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CODIS)에서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사팀은 소비자용 계보 사이트 ‘지드매치(GEDmatch)’에 그 유전정보를 올려, 범인과 먼 친척뻘로 보이는 이용자들을 찾아냈다.
수사팀은 그 친척들로부터 거꾸로 가계도를 그려 올라갔다 내려오며 후보를 좁혔고, 나이·거주지·인적사항이 들어맞는 한 사람에 도달했다. 그가 디앤젤로였다. 특정한 뒤 수사팀은 그의 집 앞에 버려진 물품에서 DNA를 채취해 현장 증거와 대조했고, 검찰 발표로는 이것이 일치해 체포영장으로 이어졌다.
디앤젤로는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캘리포니아의 두 지역에서 경찰관으로 일했고, 1979년 절도 혐의로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6월 그는 13건의 1급 살인과 다수의 납치 등에 유죄를 인정했고, 그해 8월 가석방 없는 종신형(11개의 연속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성폭행 범죄 상당수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정식 기소 대상이 되지 못했다.

유전자 계보 수사는 무엇을 증명하고 무엇을 증명하지 못하나
유전자 계보 수사가 직접 증명하는 것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이 DNA의 주인이 어떤 가계에 속하는가’다. 이 방식은 용의자 범위를 좁히는 단서를 줄 뿐, 그 자체로 특정 개인을 유죄로 못 박지 못한다. 골든스테이트 킬러 사건에서도 최종 증거는 계보 사이트가 아니라, 특정된 인물에게서 직접 확보한 DNA였다.
이 한계는 같은 수사에서 실제로 드러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수사팀은 디앤젤로 이전에 다른 계보 정보를 좇다 오리건주 요양원의 한 노인을 유력한 후보로 지목한 적이 있었다. 그의 DNA까지 확보해 대조했지만 범인이 아니었다. 유전적 연결이 ‘가깝게 보인다’는 신호가 곧 범인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그 오인이 보여준다.
그래서 이 방식은 마지막 한 걸음—대상을 특정한 뒤 그 사람에게서 직접 얻은 DNA를 현장 증거와 맞춰 보는 확인 절차—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계보 수사는 수만 명 중에서 수십 명, 다시 한 사람으로 좁히는 깔때기이지, 판결을 대신하는 도장이 아니다. 이 구분을 흐리면 ‘데이터베이스가 지목했으니 범인’이라는 위험한 지름길이 생긴다.

왜 골든스테이트 킬러는 40년 동안 잡히지 않았나
가장 큰 이유는 사건들이 오랫동안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행은 여러 카운티에 걸쳐 있었고, 각 지역 경찰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별개 수사를 이어갔다. 지역 간 정보가 실시간으로 연결되지 않던 시기에, 흩어진 사건을 한 사람의 소행으로 묶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범인이 수사의 안쪽을 알던 인물이라는 점도 무겁게 작용했을 여지가 있다. 그는 사건이 벌어지던 시기에 경찰관 신분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기관이 무엇을 어떻게 쫓는지 아는 사람은, 증거를 덜 남기고 행동 패턴을 바꾸는 데 유리하다. 이것은 확정된 동기 분석이 아니라, 그의 이력이 수사를 얼마나 어렵게 만들었는지를 가늠하는 정황이다.
결정적으로, 당시에는 오늘날의 유전자 계보 수사라는 도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현장 증거는 보존돼 있었지만, 그것을 대조할 상대가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에 없으면 DNA는 ‘이름 없는 지문’으로 남는다. 사건을 푼 것은 새로운 단서가 아니라, 남아 있던 옛 증거를 대조할 새로운 창구가 뒤늦게 열린 것이었다. 나는 학부 시절 지역 검찰청에서 오래된 사건 기록을 정리한 적이 있는데,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맞춰 볼 상대가 없어서 멈춰 선 파일이 적지 않았다.
공소시효와 유전정보, 제도는 어디가 비어 있었나
제도의 공백은 두 곳에서 드러났다. 하나는 공소시효, 다른 하나는 유전정보 이용을 규율하는 규칙의 부재다. 골든스테이트 킬러 사건에서 성폭행 범죄 상당수는 이미 시효가 지나 기소되지 못했고, 살인만이 재판대에 올랐다. 시효라는 벽이 진실 규명과 처벌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더 근본적인 공백은 수사기관이 민간 유전자 사이트를 뒤질 때 이를 규율하는 명확한 규칙이 없었다는 점이다. 체포는 2018년에 이뤄졌지만, 미국 법무부가 이 방식에 대한 잠정 지침을 내놓은 것은 2019년 11월이었다. 지침은 대상 범죄를 살인·중대 성폭행 등으로 한정하고, 다른 통상적 수사가 막힌 뒤에 쓰도록 하는 등의 기준을 담았다. 규칙이 사건보다 늦게 도착한 셈이다.
민간 데이터베이스 쪽도 흔들렸다. 사건 이후 지드매치는 이용자가 수사기관 매칭에 명시적으로 동의(opt-in)해야만 자료가 쓰이도록 정책을 바꿨고, 이후 미국의 일부 주는 이 수사기법을 법으로 규율하기 시작했다. 내 유전정보가 아니라 사촌·팔촌의 유전정보 때문에 내가 수사망에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유전정보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가계 전체가 공유하는 정보라는 점—이 이 사건이 남긴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한국의 미제 살인에도 이 방식이 쓰일 수 있나
현재로서는 골든스테이트 킬러를 잡은 방식이 한국에 그대로 옮겨지기는 어렵다. 제도와 기술적 토대가 미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5년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앴고, 2010년부터 DNA 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해 왔다.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살인 미제가 자동으로 닫히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미국과 방향이 같다.
| 구분 | 미국(골든스테이트 킬러 방식) | 한국 현행 제도 |
|---|---|---|
| 살인 공소시효 | 주별로 다르나 살인은 대체로 없음 | 2015년 태완이법으로 폐지(시행 전 시효 미완성 사건에 적용) |
| 수사용 DNA 근거 | 범죄자 DB + 민간 계보 사이트 활용 | DNA법에 따른 공적 데이터베이스 중심 |
| 친척을 통한 특정 | 계보 사이트로 먼 친척부터 역추적 | 대규모 소비자 계보 DB 부재, 법적 근거 불명확 |
차이는 ‘친척을 통해 좁히는’ 단계에 있다. 미국의 방식은 수백만 명이 자발적으로 유전정보를 올린 민간 계보 사이트를 전제로 한다. 한국에는 그만한 규모의 소비자 유전자 계보 데이터베이스가 사실상 없고, 있다 해도 수사기관이 이를 뒤지는 것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한국의 미제 해결은 주로 자체 데이터베이스의 유전자 좌위를 넓혀 대조 정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 방식을 논하려면 기술 도입 이전에 규칙부터 세워야 한다. 누구의 유전정보를, 어떤 범죄에, 어느 단계에서 열람할 수 있는지—그 선을 먼저 긋지 않으면, 미국이 사건 뒤에야 지침을 만들며 겪은 혼란을 되풀이하게 된다. 공소시효를 없앤 것과 미제를 실제로 푸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은 공소시효 폐지 이후에도 남은 미제 살인 문제에서도 확인된다.
유전자 계보 수사는 내 DNA가 아니라 친척의 DNA로도 나를 특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보호의 전제 자체를 바꾼다. 소비자 유전자 검사를 이용할 때 ‘수사기관 매칭 동의’ 항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내가 보는 이 사건
여기서부터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내 판단이다. 나는 이 사건의 핵심이 ‘첨단 기술이 범인을 잡았다’는 서사가 아니라, 기술이 앞서가고 규칙이 뒤따라온 순서에 있다고 본다. 근거는 앞에서 정리한 사실이다. 체포는 2018년, 이를 규율하는 잠정 지침은 2019년에야 나왔고, 민간 사이트의 동의 정책 변경도 사건 이후였다. 도구가 먼저 쓰이고 선은 나중에 그어졌다.
이 방식이 한국의 여러 장기 미제에 곧바로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는 가능성을 낮게 본다. 대규모 소비자 계보 데이터베이스라는 전제가 한국에는 없고, 그 전제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순간 유전정보의 가계 공유성이라는 문제가 미국보다 더 예민하게 불거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을 들여오는 속도보다, 누구의 정보를 어디까지 열람할지 정하는 속도가 늦으면 같은 혼란을 반복한다고 본다.
다만 내 판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나는 수사기관에 몸담아 본 적이 없고, 미국의 형사사법 제도를 공부하며 판결문과 사례를 읽어 온 사람의 시선일 뿐이다. 현장에서 이 도구를 실제로 다루는 수사관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기술의 성공담 뒤에 가려진 ‘규칙의 지각’이라는 문제만큼은 짚어 둘 값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하나
이 사건에서 가장 오래 남는 교훈은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대조할 상대가 없어서’ 멈춰 선 미제가 얼마나 많은가다. 골든스테이트 킬러의 현장 DNA는 수십 년간 보존돼 있었다. 사건을 연 것은 새 증거가 아니라, 그 증거를 맞춰 볼 새 창구였다. 미제를 대할 때 봐야 할 것은 ‘증거가 있느냐’만이 아니라 ‘그것을 무엇과 대조할 수 있느냐’다.
동시에, 그 창구가 열릴 때마다 개인의 유전정보가 어디까지 열람되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내 동의 없이, 친척의 선택만으로 내가 수사 대상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편리함과 별개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미제를 푸는 능력과 시민의 정보를 보호하는 규칙은 어느 한쪽만 앞서가면 반드시 마찰을 낳는다.
한국의 관점에서 봐야 할 지점은 순서다. 이런 기법을 도입할지 말지를 기술의 성능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어떤 범죄에·누구의 정보를·어느 단계에서 열람할지에 대한 선을 먼저 그어야 한다. 유전정보 식별을 둘러싼 논의는 신원 미상 유해의 이름을 되찾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자주 묻는 질문
- Q. 골든스테이트 킬러는 어떻게 특정됐나? — 범인의 DNA를 곧바로 찾은 것이 아니라, 소비자용 계보 사이트에서 그와 유전자를 일부 공유한 먼 친척들을 찾아 가계도를 좁혀 들어갔다. 최종 확인은 특정된 인물에게서 직접 확보한 DNA를 현장 증거와 대조해 이뤄졌다.
- Q. 유전자 계보 수사만으로 유죄가 인정되나? — 아니다. 이 방식은 용의자 범위를 좁히는 단서일 뿐이며, 그 자체가 유죄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대상을 특정한 뒤 직접 얻은 DNA로 확인하는 절차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 Q. 조셉 디앤젤로는 어떤 처벌을 받았나? — 2020년 13건의 1급 살인과 다수의 납치 등에 유죄를 인정했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성폭행 범죄 상당수는 공소시효가 지나 정식 기소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Q. 한국에서도 이 방식으로 미제를 풀 수 있나? — 현재로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대규모 소비자 유전자 계보 데이터베이스가 사실상 없고, 수사기관이 이를 열람할 법적 근거도 뚜렷하지 않다. 한국은 자체 DNA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방식이 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