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스 김성재 사망, 28개 주사자국과 무죄가 남긴 미제
1995년 김성재 사망 사건은 오른팔 주사자국 28개와 동물마취제 졸레틸이 확인됐지만 대법원 무죄로 끝났다. 물증과 정황, 무죄추정의 경계를 짚는다.
작성 · 검수 서동혁 · 최종 검토 2026년 8월 10일
미스터리 개요
- 1995년 11월 김성재는 솔로 컴백 무대 다음 날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부검에서 오른팔 주사자국 28개와 동물용 마취제 졸레틸이 확인됐다
- 살인 혐의로 기소된 당시 여자친구는 1심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죄, 1998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 약물 사인은 확인됐지만 '누가 주사했는가'와 '살해 범의'는 물증으로 메워지지 않았고, 사건은 3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아 있다
1995년 11월, 그룹 듀스로 이름을 알린 김성재가 솔로 컴백 무대를 마친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에서 오른팔의 주사자국 28개와 동물용 마취제 졸레틸이 확인됐고, 당시 여자친구가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고, 사건은 3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아 있다.
이 글은 누가 범인인가를 지목하려는 글이 아니다. 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사건에서 특정인을 범인으로 모는 것은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난다. 여기서 보려는 것은 다른 것이다. 물증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왜 사건은 결론에 이르지 못했는가. 법의학이 확인한 것과 끝내 확인하지 못한 것 사이에 어떤 공백이 있었는가.
김성재 사망 사건은 어떻게 전개됐나
확인된 사실만 추리면, 김성재는 컴백 무대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인은 약물로 지목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에서 오른팔 정맥을 따라 크기와 깊이가 다른 주사자국 28개가 나왔고, 시신에서 동물용 마취제 졸레틸이 검출됐다. 졸레틸은 틸레타민과 졸라제팜을 섞은 성분으로, 사람의 치료용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수사는 곧 당시 여자친구에게로 좁혀졌다. 사건 약 두 달 전 그가 동물병원에서 졸레틸을 구입한 이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구입 이력과 두 사람의 관계, 사망 전후 정황을 엮어 계획적 살인으로 보고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의 구형은 사형이었다.
그러나 항소심은 판단을 뒤집었고, 1998년 2월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사건 발생부터 확정판결까지 2년 3개월이 걸렸다. 아래 표는 공개된 재판 기록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 시점 | 내용 |
|---|---|
| 1995년 11월 | 솔로 컴백 무대 다음 날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 |
| 부검 | 오른팔 주사자국 28개 확인, 졸레틸 검출 |
| 사건 약 2달 전 | 당시 여자친구, 동물병원에서 졸레틸 구입 이력 |
| 1996년 1심 | 무기징역 선고(검찰 사형 구형) |
| 1996년 항소심 | 무죄 선고 |
| 1998년 2월 26일 | 대법원, 검사 상고 기각 — 무죄 확정 |

부검 결과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못했나
부검이 확인한 것은 사인의 방향이지, 사건의 전모가 아니다. 오른팔의 주사자국과 졸레틸 검출은 김성재가 약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가리킨다. 여기까지는 물증의 영역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누가 그 주사기를 쥐었는가, 그 약물이 확실한 치사량이었는가, 스스로 놓았을 가능성은 배제되는가. 이 질문들에 부검 소견은 답하지 못했다.
주사자국이 28개라는 사실은 두 방향으로 읽혔다. 한쪽은 이렇게 많은 자국을 스스로 남기기 어렵다고 봤고, 다른 한쪽은 정맥을 제대로 찾지 못해 반복해서 시도한 흔적일 수 있다고 봤다. 자국의 위치가 오른팔에 몰려 있다는 점을 두고도 해석이 갈렸다. 타인이 놓았다는 근거로 보는 시각과, 자가 주사로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시각이 맞섰다. 같은 물증이 정반대의 결론을 떠받치는 재료가 된 것이다.
결정적으로, 검출된 성분의 정체가 초기에 곧바로 규명되지 않았다. 졸레틸의 구성 성분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감정의 신뢰도와 시점이 쟁점이 됐다. 물증은 분명히 몸에 남아 있었지만, 그 물증이 ‘살인’이라는 결론까지 데려가려면 넘어야 할 칸이 여럿 비어 있었다. 아래 표로 정리하면 그 공백이 뚜렷하게 보인다.
| 물증이 확인한 것 | 물증이 확인하지 못한 것 |
|---|---|
| 오른팔의 주사자국 28개 | 주사를 놓은 사람이 누구인가 |
| 졸레틸 검출 | 투여량이 확실한 치사량이었는지 |
| 약물에 의한 사망 가능성 | 타살·자·타의 구분을 가르는 결정적 흔적 |

왜 여자친구는 무죄를 받았나
항소심이 무죄로 돌아선 핵심은 ‘정황은 있으나 범행을 잇는 고리가 끊겼다’는 판단이었다. 판결문은 살해의 범의를 가지고 약물을 투여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형사재판의 유죄는 합리적 의심을 넘는 증명을 요구한다. 의심이 짙다는 것과 증명됐다는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다.
검찰 논리의 뼈대는 ‘피고인이 산 졸레틸은 치사량 이상이고, 그것을 투여했으니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치사량이 특정돼야 성립한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졸레틸의 치사량은 명확히 확정하기 어려웠다. 치사량을 알 수 없으면 ‘치사량을 투여했다’는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 기소의 중심 기둥이 흔들린 것이다.
졸레틸 구입 이력도 결정적 증거가 되지 못했다. 그 약물은 동물병원이나 동물약국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고, 구입 사실이 곧 투여 사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구입한 양도 다툼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형사사법을 공부하던 시절, 검찰청 인턴으로 사건 기록을 정리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정황을 아무리 촘촘히 쌓아도, 그 정황을 피고인의 손과 직접 잇는 한 칸이 비면 유죄는 서지 않는다. 이 사건이 꼭 그랬다.
김성재 사건은 왜 미제로 남았나
무죄 확정은 ‘그가 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졌다’는 뜻이 아니다. 형사재판은 특정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릴 뿐, 사건의 진상을 대신 규명해 주지 않는다. 여자친구가 무죄가 되면서, 그렇다면 그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았다. 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초기 대응의 조건도 사건을 어렵게 만들었다. 유명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수사보다 앞서 달리기 쉽다. 현장은 빠르게 정리되고, 관심은 ‘누가 범인인가’로 곧장 쏠린다. 그러나 미제의 씨앗은 대개 초동 단계에서 놓친 물증과 시간대의 빈틈에 있다. 검출된 약물의 성분 규명이 늦어진 점은, 당시 감정 역량과 낯선 물질 앞에서 수사가 놓인 한계를 보여준다.
결국 이 사건은 두 가지가 겹친 미제다. 하나는 물증이 사인의 방향까지만 가리키고 행위자를 특정하지 못한 법의학의 공백이고, 다른 하나는 유일하게 재판대에 선 인물이 무죄가 되면서 남은 수사상의 공백이다. 재판이 끝난 뒤 새 피의자를 향한 수사가 이어지지 못하면, 사건은 법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닫히지 않은 채 멈춘다. 통영 60대 여성 살인처럼, 단서가 있었는데도 결론에 닿지 못한 사건들은 대개 이 지점에서 멈춰 선다.
정황만으로 사람을 벌할 수 있는가
이 사건이 남긴 가장 무거운 질문은 정황증거와 무죄추정의 경계다. 물증이 사람의 손을 직접 가리키지 못할 때, 남는 것은 정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다. 형사사법은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이를 벌하지 않는다’는 원칙 위에 서 있다. 김성재 사건의 무죄는 이 원칙이 작동한 결과에 가깝다.
문제는 법정 밖에 있었다. 무죄가 확정된 뒤에도 사회적 의심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재판은 끝났지만 여론의 재판은 계속됐고, 무죄를 받은 당사자는 오랜 세월 의심의 시선 속에 놓였다. 뒷날 자신을 살해 용의자로 몰았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사실은, 무죄와 사회적 낙인이 얼마나 다른 궤도를 도는지 보여준다. 법이 무죄라 해도 사람들의 마음속 판결은 따로 굴러간다.
정황증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물증이 없어도 정황이 촘촘하면 유죄가 서는 사건은 많다. 다만 정황의 사슬에서 어느 한 칸이 비면, 그 빈칸을 심증으로 메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다. 잡고도 벌하지 못하는 증거의 벽은 억울한 답답함을 남기지만, 그 벽이 있기에 무고한 사람이 함부로 처벌되지 않는다. 김성재 사건은 그 벽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준다.
내 예상은 이렇다
여기서부터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내 판단이다. 나는 이 사건이 앞으로도 ‘누가’에 대한 답에는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근거는 앞에서 정리한 물증의 성격이다. 사인의 방향은 남았지만 행위자를 특정할 결정적 흔적은 남지 않았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공백을 메울 새 물증이 나타날 여지는 거의 없다. 유일하게 재판대에 섰던 인물은 무죄가 확정됐고, 그 판단은 법리적으로 타당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타살이 아니었을 가능성은 어떤가. 나는 그 가능성을 완전히 접지는 않되 낮게 본다. 스스로 놓았다고 보기에는 자국의 수와 분포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렸고,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했다. 즉 자·타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정직한 상태다. ‘무죄=자연사’가 아니고 ‘무죄=타살’도 아니다. 물증이 두 갈래 앞에서 멈춰 섰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건의 핵심이다.
내 한계도 밝혀 둔다. 나는 수사기관에 몸담아 본 적이 없고, 부검 소견 원본이나 감정서 전문을 본 것도 아니다. 공개된 판결 취지와 보도를 근거로 판단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사건에서 확실한 것은 ‘한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의 행위자를 법이 특정하지 못했다’는 두 문장뿐이라는 점이다.
김성재 사건에 남는 질문
가장 크게 남는 질문은 ‘왜 물증이 있었는데도 사건이 닫히지 않았는가’다. 몸에 남은 흔적과 검출된 약물은 분명했지만, 그것이 행위자와 범의까지 증명하지는 못했다. 이 간극은 법의학이 만능이 아니라는 오래된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드라마 속 부검은 사인과 함께 범인까지 알려주지만, 현실의 부검은 종종 사인의 방향에서 멈춘다.
두 번째 질문은 무죄 이후의 시간에 관한 것이다. 재판이 끝난 뒤에도 진상 규명을 이어 갈 장치가 우리에게 있는가. 형사재판이 특정 피고인의 무죄로 끝나면 수사는 사실상 종결되기 쉽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과 한 피고인의 무죄는 별개의 문제다. 재심이 아닌, 진상 자체를 다시 들여다보는 통로가 좁다는 점은 다른 미제사건들에서도 반복되는 구조다.
마지막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문이다. 유명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진상보다 ‘범인 찾기’에 먼저 마음을 쏟는다. 무죄가 확정된 사람에게조차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이 사건은 사인의 미스터리인 동시에, 증명되지 않은 의심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사회의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자주 묻는 질문
- Q. 김성재 사망 사건은 결국 어떻게 결론이 났나? — 살인 혐의로 기소된 당시 여자친구가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죄, 1998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사인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채 미제로 남았다.
- Q. 오른팔 주사자국 28개는 무엇을 뜻하나? — 부검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다만 이 자국이 타인의 소행인지 자가 주사인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렸고, 어느 쪽으로도 단정되지 않았다.
- Q. 왜 무죄가 나왔나? — 정황은 있었으나 검찰이 살해 범의와 투여 주체, 확실한 치사량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의 유죄는 합리적 의심을 넘는 증명을 요구한다.
- Q. 지금도 재수사가 가능한가? — 현실적으로 어렵다. 재판이 무죄로 끝난 뒤 새 물증이 나오지 않는 한 수사를 다시 열 동력이 약하고, 시간이 흐르며 물증 확보 가능성도 크게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