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완이법 이후 11년, 시효 없는 살인사건은 얼마나 풀렸나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앤 태완이법의 내용과 소급 경계, 증거 보존과 전담 수사 체계의 한계를 분석한다.
작성 · 검수 서동혁 · 최종 검토 2026년 10월 8일
사건 요약
- 태완이법(형사소송법 제253조의2)은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앴다
- 소급은 시행 당시 시효가 남은 사건까지여서, 법의 계기가 된 사건 자체는 제외됐다
- 시효 폐지는 범인 검거보다 증거 보존과 전담 수사 체계가 받쳐줄 때 의미가 있다
- 2015년 이후 보도된 해결 성과는 있으나 최신 통계는 경찰청 공식 자료 확인이 필요하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채 달력만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살인 사건에도 정해진 기한이 있었고, 그 기한이 지나면 범인이 밝혀져도 법정에 세울 수 없었다. 2015년 여름, 이 기한 자체를 없앤 법이 시행됐다. 흔히 ‘태완이법’으로 부르는 형사소송법 제253조의2다. 시행 11년째인 지금, 이 법이 실제로 무엇을 바꿨고 무엇을 바꾸지 못했는지 차분히 따져 볼 때가 됐다. 이 글은 사건의 참혹함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이름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제도가 어떻게 설계됐고 어디에서 한계를 드러냈는지에 초점을 둔다.
한 줄짜리 조문이 바꾼 것
법의 뼈대는 단순하다. 사람을 살해한 범죄 가운데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종범은 제외된다. 2015년 7월 24일 국회를 통과했고 같은 달 31일 시행됐다. 입법의 계기는 1999년 대구에서 어린 학생이 황산 테러를 당해 숨진 사건이다.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시효 완성이 다가오자 유족과 시민들이 법 개정을 요구했고, 2015년 3월 개정안이 발의됐다.
공소시효는 원래 두 가지 논리 위에 서 있다. 하나는 시간이 흐르면 증거가 흩어져 공정한 재판이 어렵다는 현실론이다. 다른 하나는 오래 처벌받지 않고 지낸 사람의 법적 안정성을 보호한다는 논리다. 살인 같은 중대 범죄에서는 이 두 논리가 힘을 잃는다는 비판이 오래 있었다. 피해자의 생명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데, 가해자의 안정만 보호받는 구조라는 것이다. 2007년 개정으로 살인죄 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늘었고, 2015년에는 아예 배제로 갔다. 국가가 ‘언젠가는 반드시 묻는다’는 메시지를 법문에 새긴 셈이다.
다만 조문이 있다고 수사가 저절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시효가 없다는 말은 기한의 압박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압박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이 채우느냐가 이 법의 실질을 결정한다.

소급의 경계선이 갈라놓은 사건들
가장 많이 논란이 된 대목은 소급 범위다. 헌법은 형벌 불소급 원칙을 두고 있어서, 처벌을 새로 만들거나 무겁게 하는 법을 과거 행위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시효는 엄밀히 말해 형벌 자체가 아니라 소추 가능 기간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이미 시효가 끝난 사건을 되살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입법부는 타협선을 그었다. 법 시행 당시 아직 시효가 끝나지 않은 사건에만 적용한다는 것이다. 보도들에 따르면 그 결과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이 적용 대상에 들어간다. 일부 매체가 다른 기준일을 적은 사례도 있어 정확한 날짜는 법제처 조문과 부칙에서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 경계선은 역설을 낳았다. 법의 이름이 된 사건 자체는 적용을 받지 못했다. 시행 직전인 2015년 7월 10일 대법원이 재정신청 기각에 대한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시효가 이미 완성된 것으로 정리됐기 때문이다. 또 2000년 8월 이전에 발생한 사건들은 아무리 사회적 관심이 커도 같은 틀로 다룰 수 없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시효가 지난 뒤에 진범이 특정됐고, 우리 사회는 ‘범인을 알아도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대로 목격했다. 관련 쟁점은 이춘재 8차 사건 분석에서 다룬 적이 있다.
입법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이 경계는 ‘정의의 최대치’가 아니라 ‘위헌 시비를 피할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깝다. 피해자 가족에게는 날짜 하나로 갈리는 운명이 가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법원과 학계가 소급 확대에 조심스러운 이유는, 한번 예외를 넓히면 다른 범죄에서도 소급 처벌의 선례가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의학이 말하는 ‘시간의 값’
시효 폐지가 실제 검거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지나도 증거가 살아 있어야 한다. 여기서 법의학과 증거 관리의 문제가 등장한다. 생물학적 증거, 특히 DNA는 적절히 보존하면 수십 년 뒤에도 분석이 가능하다. 반대로 습기, 온도 변화, 오염된 보관 환경은 증거를 되돌릴 수 없게 망가뜨린다. 과학수사 기술은 꾸준히 발전해 왔다. 과거에는 검출되지 않던 극미량 시료에서 프로필을 얻고, 혼합 시료를 분리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오래된 증거물이 새 기술을 만나 결정적 단서가 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전제 조건이 붙는다. 사건 당시 증거를 폐기하지 않고, 추후 감정이 가능한 형태로 남겨 두었느냐다. 기록과 증거물의 보존 기한, 이관 절차, 담당자 교체 때의 인수인계가 허술하면 시효가 없어도 수사는 맨땅에서 시작해야 한다. 증인의 기억은 더 빠르게 흐려진다. 목격자는 세월이 지나며 사실과 이후에 들은 이야기를 섞어 기억하는 경향이 있고, 진술의 신빙성 평가는 점점 어려워진다. 시효 폐지가 ‘언제든 수사할 수 있다’는 권한을 준 것이라면, 증거 보존은 ‘실제로 수사할 수 있다’는 능력을 결정한다.
그래서 이 제도를 평가할 때 선고 건수만 볼 일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건의 증거가 재감정 가능한 상태로 보관되고 있는지, 이를 점검하는 체계가 있는지가 더 근본적인 지표다.
수사 조직이 바뀌었다: 전담팀과 단계별 지침
법 시행 이후 경찰은 장기미제 사건 전담팀을 공식 직제로 편성했다. 보도에 따르면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5년이 지나도록 범인이 검거되지 않으면 사건 기록과 증거물을 미제전담팀으로 넘기고, 이후 추가로 일정 기간 수사를 이어 가는 단계별 지침도 도입됐다. 핵심은 현장 수사팀이 새 사건에 매달리느라 오래된 사건을 놓치는 구조를 끊는 것이다. 사건을 낯선 눈으로 다시 보는 것도 중요하다. 초동수사에서 자리 잡은 가설에 매인 수사관은 다른 가능성을 지나치기 쉽다. 새 수사관은 같은 기록에서 놓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자주 거론되는 사례가 약촌오거리 사건이다. 당시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사람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이후 진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재판에 넘겨졌다. 보도에 따르면 진범 수사 당시 공소시효가 며칠밖에 남지 않았는데, 때마침 시효 배제 법이 시행되면서 기소가 가능했다. 이 사례는 법의 효용과 함께 아픈 교훈도 준다. 한쪽에서는 잘못된 수사로 무고한 사람이 처벌받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진범이 오래 자유로웠다. 시효 폐지는 후자를 막는 장치이지만, 전자를 막는 것은 초동수사의 품질과 자백 위주 수사의 통제, 법원의 엄격한 증거 판단이다.
2017년과 2019년에 나온 보도들은 시행 이후 장기미제 사건 몇 건이 해결됐다고 전한다. 다만 이는 당시 시점의 숫자이며, 2026년 현재의 누적 통계는 경찰청의 공식 발표로 확인해야 한다. 이 글은 확인되지 않은 최신 수치를 단정하지 않는다.
범죄심리 관점: 시효가 사라지면 범인은 어떻게 달라지나
시효 폐지가 범죄 억지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연구마다 견해가 갈린다. 대체로 형사정책 학자들은 처벌의 강도보다 ‘붙잡힐 확률’이 억지 효과에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시효 폐지는 눈에 띄는 억지책이라기보다, 범인 입장에서 ‘끝나지 않는 불안’을 만드는 장치에 가깝다. 도피 중인 사람에게 만료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평생 신분 조회, 가족 관계, 우연한 DNA 일치를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장기 미제 사건의 해결은 의외의 경로에서 시작되는 일이 많다. 다른 범죄로 검거된 사람의 DNA가 데이터베이스에서 과거 사건과 일치하거나, 오래 침묵하던 지인이 입을 열거나, 가족 간 갈등이 제보로 이어지는 식이다. 시간이 흐르면 범인을 감싸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시효 만료가 없으면 이런 우연이 수사로 연결될 창구가 열려 있다. 반대로 시효가 있던 시절에는 증언하려던 사람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며 포기했을 수 있다.
한편 피해자 유족의 심리에도 영향이 크다. 시효는 유족에게 ‘국가가 이 사건을 포기하는 날짜’로 읽혔다. 그 날짜가 사라진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증언이 많다. 그러나 동시에 기한 없는 기다림이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수사 진행 상황을 유족에게 정기적으로 알리는 제도가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내가 보는 이 사건
나는 태완이법이 옳은 방향이었다고 본다. 살인이라는 범죄의 무게를 생각하면 ‘시간이 지났으니 면죄’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다만 이 법을 성공으로 부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법이 만든 것은 가능성이지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증거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다면, 전담팀이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받지 못했다면, 초동수사의 오류가 바로잡히지 않았다면 시효 없는 사건은 그저 서류 보관함에 오래 머무는 사건이 될 뿐이다.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장기미제 사건의 증거 보존 현황과 재감정 실적을 연 단위로 공개하는 것이다. 숫자가 공개돼야 제도가 굴러가는지 검증할 수 있다. 둘째, 소급 경계 밖에 놓인 사건들을 위해 ‘시효가 아니라 진상 규명’의 길을 넓히는 일이다.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도 재조사와 공식 기록, 유족에 대한 설명은 가능하다. 법은 날짜로 선을 그을 수밖에 없지만, 사회가 기억하는 방식까지 날짜에 묶일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사건을 소비하는 방식도 돌아보고 싶다. 범인의 수법이나 피해의 참상보다, 제도가 어디서 새고 어디서 막혔는지를 묻는 편이 피해자에게 더 이로운 관심이라고 믿는다.
자주 묻는 질문
- Q. 태완이법은 모든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없앴나? — 아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가 대상이며 종범은 제외된다. 시행 당시 시효가 남아 있던 사건까지만 소급 적용된다.
- Q. 법의 이름이 된 사건은 이 법으로 수사할 수 있나? — 보도에 따르면 시행 직전 대법원 결정으로 시효가 이미 완성돼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법은 그 사건 이후의 비슷한 사례를 위한 제도가 됐다.
- Q. 오래된 사건도 DNA로 풀릴 수 있나? — 증거물이 적절히 보존됐다면 가능성이 있다. 감정 기술이 발전해 과거에는 분석이 어렵던 시료도 재감정의 대상이 된다. 다만 보존 상태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 Q. 최신 해결 건수는 어디서 확인하나? — 경찰청의 공식 발표나 국회 제출 자료를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 글에 언급한 성과는 과거 보도 시점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