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호 유괴사건, 44일간 60번 전화하고도 왜 못 잡았나
1991년 이형호 유괴 살인사건은 범인이 44일간 60여 차례 전화하고도 잡히지 않은 채 2006년 공소시효로 미제가 됐다. 수사·성문분석·법제도의 공백을 짚는다.
작성 · 검수 서동혁 · 최종 검토 2026년 8월 27일
미스터리 개요
- 1991년 압구정동에서 사라진 이형호 군은 44일간 60여 차례 협박전화가 이어졌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 카폰 시대의 통신 추적 한계, 반복 무산된 몸값 전달, 물증 없는 성문분석이 겹치며 사건은 미제로 굳었다.
-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났고 2015년 태완이법도 소급되지 않아, 지금 범인을 찾아도 처벌할 수 없다.
1991년 1월 29일 저녁,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초등학교 3학년 이형호 군이 사라졌다. 그날 밤부터 44일 동안 범인의 협박 전화가 60여 차례 이어졌고, 부모는 매번 돈을 들고 서울 곳곳을 돌았지만 범인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는 3월 13일 한강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2006년 1월 공소시효가 끝나면서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았다.
이 사건은 화성 연쇄살인, 개구리 소년 실종과 함께 오래도록 ‘3대 미제’로 불렸다. 화성 사건이 이춘재의 자백으로 실체가 드러난 지금, 이형호 사건은 여전히 범인의 이름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범인이 무려 44일이나 부모와 통화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단서가 없어 못 잡은’ 미제와는 결이 다르다. 접점은 반복해서 생겼는데도 매번 놓쳤다.
이형호 유괴사건은 어떻게 전개됐나
사건은 실종 당일 밤 첫 협박 전화로 시작해 44일 만에 시신 발견으로 끝났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범인은 서울·경기 말씨를 쓰는 30대 남성으로 추정됐고, 첫 통화에서 몸값 7천만 원과 카폰이 달린 승용차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카폰은 소수만 갖던 고가 장비였고, 범인은 이 카폰으로 부모를 실시간 호출하며 서울 시내 곳곳으로 이동시켰다.
범인은 김포공항 국내선 주차장을 비롯한 여러 장소를 지정해 부모를 불러냈지만, 정작 약속 장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은 지정한 자리에 차를 세우게 한 뒤 공항버스를 타고 돌아가라 해놓고, 그날 밤 다시 전화를 걸어 ‘뒷좌석에 누가 타고 있었다’는 식의 변명을 했다. 접선은 이런 방식으로 번번이 어그러졌다.
부검 결과는 더 무거운 사실을 드러냈다. 이형호 군은 유괴 직후 비교적 이른 시점에 이미 숨졌던 것으로 추정됐다. 다시 말해 범인은 아이가 이미 죽은 상태에서 한 달 넘게 부모에게 돈을 요구한 것이다. 협박이 이어지는 동안 부모는 아이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래는 확인된 경과를 정리한 것이다.
| 시점 | 내용 |
|---|---|
| 1991.1.29 저녁 | 압구정동 아파트 놀이터에서 이형호 군 실종 |
| 1.29 밤 | 첫 협박전화 — 몸값 7천만 원과 카폰 달린 차량 요구 |
| 1.29~3월 | 44일간 60여 차례 협박전화, 몸값 전달 시도 반복 무산 |
| 1991.3.13 | 잠실 인근 한강 배수로에서 시신 발견 |
| 2006.1.28 | 공소시효 만료 — 영구 미제 |
| 2015 | 태완이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이 사건엔 소급 불가) |

44일 동안 전화가 왔는데 왜 발신지를 못 잡았나
1991년의 통신 추적 기술로는 짧은 통화의 발신지를 실시간으로 특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통화가 연결되는 순간 기지국과 회선 정보가 자동으로 남지만, 당시 유선전화 역추적은 교환대에서 회선을 수동으로 되짚어야 했고 시간이 걸렸다. 범인은 이 시차를 알았던 것처럼 통화를 짧게 끊고 공중전화를 옮겨 다녔다.
범인이 부모에게 카폰 차량을 요구한 것도 이 맥락에서 다시 보게 된다. 카폰은 범인이 부모를 언제든 원하는 장소로 호출할 수 있게 해준 반면, 부모 측이 범인의 위치를 잡을 수단은 되지 못했다. 통신의 주도권이 처음부터 범인에게 있었던 셈이다. 수사팀이 특정 공중전화 주변에 잠복해도, 범인이 매번 다른 전화를 쓰면 그물은 늘 한 발 늦었다.
미국에서 형사사법을 공부하던 시절, 유괴 사건 수사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전화 회선에 추적 장치를 걸어두는 ‘트랩 앤드 트레이스’ 절차였다. 1932년 린드버그 유괴 사건 이후 미국은 몸값 지폐의 일련번호를 기록하고 회선을 감시하는 표준 절차를 다듬어 왔다. 한국은 1991년 당시 이런 실시간 추적 인프라와 표준 매뉴얼이 얇았고, 결국 ‘통화는 계속되는데 위치는 모르는’ 상태가 44일간 이어졌다. 이것이 첫 번째 구멍이다.

몸값 전달은 왜 번번이 무산됐나
범인이 부모를 여러 장소로 옮겨 다니게 하며 미행과 포위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유괴범이 접선 장소를 계속 바꾸는 것은 수사팀의 잠복 인력을 분산시키고, 자신이 감시받는지 시험하는 전형적 수법이다. 범인은 지정한 장소에 부모만 도착하게 한 뒤 주변을 살피고,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접선을 포기하고 다음 전화로 넘어갔다.
여기에는 언론과 여론의 압력이라는 변수도 겹쳤다. 어린이 유괴 사건이 알려지면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그만큼 접선 현장 주변의 움직임도 많아진다. 범인이 ‘지켜보는 눈’을 의심할 이유가 늘어나는 것이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아이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동시에 범인을 현장에서 붙잡아야 하는, 서로 부딪치는 두 목표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부검 추정대로 아이가 이미 숨진 뒤였다면 범인에게는 ‘아이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는 압박 자체가 없었다. 접선에 나갈 유인이 부모 쪽에만 있고 범인 쪽에는 없었다는 뜻이다. 돈만 챙길 수 있으면 좋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그냥 전화를 끊으면 그만인 구조. 이 비대칭이 60여 차례의 통화를 모두 헛되게 만든 뼈대다.
성문분석은 무엇을 증명하고 무엇을 증명 못 했나
성문분석은 ‘이 목소리가 그 목소리와 닮았다’까지는 말해도 ‘이 사람이 범인이다’까지는 말해주지 못한다. 수사 과정에서 범인의 협박 전화 음성은 녹음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성문(聲紋) 분석 대상이 됐다. 성문분석은 음성의 주파수 특성을 비교해 동일인 여부를 따지는 기법으로, 당시로서는 진일보한 과학수사였다.
그러나 성문분석에는 두 겹의 한계가 있다. 첫째, 비교 대상이 될 용의자의 육성 표본이 있어야 대조가 가능하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음성 자료가 있어도 맞춰 볼 상대가 없다. 둘째, 설령 유사하다는 결과가 나와도 그것만으로는 범행을 입증하는 직접 증거가 되기 어렵다. 목소리가 닮았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아이를 데려가 살해했다는 사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실제로 한때 특정 인물이 유력하게 거론된 적이 있었으나, 알리바이가 확인되거나 범행을 잇는 물증이 나오지 않아 입건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도 재판을 받은 적이 없는 만큼, 특정인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음성이라는 단서 하나가 물증의 뒷받침 없이는 사건을 닫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미제의 벽은 대개 ‘단서가 없어서’가 아니라 ‘단서를 사람으로 연결하지 못해서’ 생긴다.
범인을 찾아도 왜 처벌할 수 없나
2006년에 공소시효가 끝났고, 뒤에 만들어진 태완이법은 이 사건에 소급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형호 사건 당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다. 시신이 발견된 1991년을 기준으로 15년이 지난 2006년 1월, 설령 범인이 특정되더라도 형사 재판에 세울 수 없는 상태가 됐다.
2015년 시행된 이른바 태완이법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대구에서 황산 테러로 숨진 김태완 군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법이다. 다만 이 법은 시행 시점에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사건에만 적용된다. 형벌 법규를 사후에 소급해 불리하게 적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이형호 사건은 2006년에 이미 시효가 완성돼, 태완이법의 문턱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못했다.
이 대목은 제도가 사건을 뒤늦게 따라간 흔적이다. 유괴·살인 같은 중대범죄에 공소시효를 두는 것이 옳으냐는 논쟁은 오래됐고, 태완이법은 그 논쟁의 잠정적 답이었다. 그러나 법이 바뀌기 전에 시효가 끝난 사건들은 그 답의 바깥에 남았다. 같은 미제라도 개구리 소년 사건과 마찬가지로, 진실 규명과 형사 처벌이 별개의 문제가 돼버린 것이다.
내 예상은 이렇다
여기서부터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내 판단이다. 나는 이 범인이 피해 가족의 생활 반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인물일 가능성을 비교적 높게 본다. 근거는 세 가지다. 아이가 어느 놀이터에 있는지, 집 전화번호가 무엇인지, 그리고 부모가 카폰 달린 차를 마련할 만한 경제력이 있는지를 초기부터 전제하고 움직였다는 점이다. 완전한 무작위 범행이라기보다, 대상을 미리 관찰했거나 주변 정보를 통해 알고 접근했을 여지가 있다.
반대로 ‘치밀하게 계획한 전문 범죄자’라는 상(像)은 낮게 본다. 44일이나 통화를 끌면서도 돈을 한 푼도 못 챙기고, 접선 방식이 매번 어설프게 무산된 것은 오히려 계획의 미숙함에 가깝다. 아이를 일찍 숨지게 한 정황 역시 통제 실패에 가깝지 냉정한 설계로 보기 어렵다. 돈에 대한 집착은 강했으나 실행 역량은 그에 못 미쳤던 인물, 이라는 쪽에 나는 무게를 둔다.
다만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나는 수사기관에 몸담아 본 적이 없고, 사건 기록 원본을 본 것도 아니다. 공개된 보도와 판결 이전 단계의 정황만으로 세운 추정이라 틀릴 수 있다. 그래서 특정 인물을 지목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려는 것은 범인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어떤 성격의 범인이었기에 이런 방식으로 흔적을 남겼는지를 되짚는 일이다.
무엇이 남는가
남는 질문은 결국 ‘왜 접점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매번 놓쳤나’로 모인다. 60여 차례의 통화, 여러 번의 접선 시도는 모두 범인과 수사망이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 기회들이 통신 추적의 공백, 접선 구조의 비대칭, 물증 없는 단서라는 세 겹의 벽에 막혀 하나도 성사되지 못했다.
이 사건이 오늘 일어났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기지국 기반 위치 추적, CCTV, 금융 거래 추적, 유전자 감식이 지금은 표준이다. 미제 사건을 다시 읽는 이유는 범인을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 무엇이 비어 있었는지를 확인해 같은 공백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유사한 관점에서 정리한 개구리 소년 사건도 초동수사의 판단이 어디서 갈렸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아동 대상 협박·유괴가 의심될 때는 통화 기록과 발신 시각을 지우지 말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증거 관리다. 접선 요구가 오더라도 개인이 단독으로 움직이기보다 즉시 112에 알리고 수사기관의 지침을 따르는 편이 안전하다.
자주 묻는 질문
- Q. 이형호 유괴사건의 범인은 지금 밝혀졌나요? — 아니다. 여러 차례 수사가 이뤄졌지만 범인을 특정해 재판에 세우지 못했다. 한때 거론된 인물이 있었으나 물증 부족으로 입건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Q. 왜 지금 범인을 찾아도 처벌할 수 없나요? — 사건 당시 살인죄 공소시효 15년이 2006년에 완성됐기 때문이다. 2015년 태완이법으로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이미 시효가 끝난 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 Q. 영화 ‘그놈 목소리’가 이 사건을 다룬 건가요? — 그렇다. 2007년 개봉한 ‘그놈 목소리’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 말미에 실제 협박 전화 음성을 공개하며 제보를 호소하기도 했다.
- Q. 범인은 왜 아이가 숨진 뒤에도 계속 전화했나요? — 확정된 답은 없다. 다만 부검상 이른 시점 사망 정황을 고려하면, 범인이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협박을 이어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